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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미니 Dec 19. 2020

Christmas at home

그야말로 자가격리 시대이다. 낯선 이에 대한 경계와 불신은 일상이 되었고 지인과 가족들, 심지어 나 자신도 믿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너무도 쓸쓸하고 한없이 무거운 2020년 12월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몇 년 전부터 올해는 연말 느낌이 나지 않는다는 말을 습관적으로 내뱉었지만 이제는 느낌이 아닌 실체적 진실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중이다. 과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올 것인가. 


연말연시는 가족과 함께. 이제 이 말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바이러스 창궐은 한 편으로는 가족 간의 결속력을 강화시킨다. 나 역시 지난 몇 주간 외출과 모임을 자제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 것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나에게 가족은 대단히 화목하지도, 특별히 불행하지도 않은 관계로써 물리적 시공간을 공유해 온 독립적 개체들의 집합체로 작용하고 있었다. 다 큰 성인 가족들이 한 공간에 머무를 때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가족 간 거리두기 법칙이 있다. 1. 각자의 공간과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2. 식사 시간에 만나 식구라는 연대감을 잠시 느껴본다. 3. 다시 또 각자의 일상으로 흩어진다. 비록 자의는 아니지만 지금이야말로 가족 간 심리적 거리두기를 완화시킬 적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안 분위기를 바꿔보겠어... 큰 맘먹고 크리스마스트리를 구입한다. 차에 실어 주차장까지 옮기는 그 짧은 순간마저 버거웠던지 트리 장식을 마치고 바닥에 앉다가 허리를 삐끗하는 대참사를 맞았다. 취소된 크리스마스 홈 파티나 친구들과의 여행을 가족과 함께 해 볼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굳이 가족끼리... 새삼스럽게.. 역시 안 하던 짓은 계속 안 하는 게 맞다. 


솜씨 없는 실력으로 꾹꾹 눌러 담은 그 시절 추억의 잔상

예전 사진들을 뒤적이다가 유학 생활 중 찍어두었던 미국 가정의 흔한 크리스마스 배경 사진을 발견했다.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아파트 계약이 종료되어 고민하던 나에게 흔쾌히 방 한 칸을 내어주던 고마운 친구의 집이다. 그 해 12월이 되자 가족들은 차고에 처박혀 있던 대형 트리를 꺼내와서 장식을 하고 양말을 걸어둔 벽난로에 모여 앉아 마시멜로를 구워 먹었다. 해마다 반복되는 소소한 일상에도 설렘과 행복감을 느끼는 그들을 보며 마치 나도 그들 문화의 일부가 된 듯한 착각에 빠져 잠시나마 순수한 "어른이"가 되어보았다. 그리고 한 동안 잊고 지낸 그 시절 추억이 소환되자 갑자기 그림으로 남겨보고 싶다는 과한 설렘과 충동이 일었다. 의욕만큼 따라주지 않는 실력이기에 더 이상의 터치는 무의미하다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역시 추억은 그곳에 머무를 때 가장 빛을 발한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해마다 12월이면 송년회라는 이름으로 각종 모임과 만남에 집중하면서 나 자신과 대면할 시간을 최대한 미루고 외면해왔다. 올해가 또 이렇게 가는구나.. 나는 무얼 하고 살았나.. 그 씁쓸한 뒷 맛과 개운치 않음이 싫어서. 나이와 실력이 비례하지 않음에 슬퍼하지 않으려고. 사람들을 만나 한바탕 웃고 떠들면서 끌어올린 텐션을 벗 삼아 다시 또 시작해 보자 다짐하기 위해. 그렇게 나만의 방식으로 한 해를 떠나보냈었다. 코로나는 나의 12월을 허무함과 착잡함과 우울함으로 채워놓았다. 당황스럽다.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할 물리적 시간의 방대함이. 고요한 침잠 속 나 자신을 마주해야 하는 순간들이 너무 자주 찾아와서. 스스로를 토닥이고 감싸 안고 희망 주문을 걸어야 하는 부담감에. 늘 해왔던 이별 공식이 먹히질 않는다. 올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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