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은 고독과의 싸움이었다. 계획과 실행과 전진. 내 삶의 활력소였던 이 삼박자가 어긋나기 시작하면서 때아닌 권태기가 찾아온 것이다. 습관처럼 이 죽일 놈의 몹쓸 코로나 탓을 한 게 벌써 1년이다. 누군가에겐 먹고살기 힘들고 매일매일이 생존 전쟁인 하루하루를 나이 먹는 게 서럽네.. 계획대로 되는 일이 하나 없네.. 외롭고 쓸쓸하네.. 이런 류의 감정 사치로 채우는 것은 배부른 투정에 가깝다.
새로운 해를 앞두고 내년에는 이렇게 살아봐야겠다고 다짐하는 순간들이 있다. 물론 대부분은 삶의 중간 어디쯤에서 표류하고 마는 반쪽짜리 계획들이지만 내년은 올해보다 나은 한 해를 꿈꾸며 To do List 또는 Bucket List라는 이름으로 써 내려가다 보면 그래도 이거 하나는 했다는 아주 작은 성취감 정도는 느낄 수 있다. 그 흔한 자전거 타는 법을 정말 힘겹게 배우고 새 자전거를 타고 한강변을 달렸던 일이나 동네에 새로 생긴 취미 미술 화실을 발견하고는 바로 등록했던 일, 그리고 읽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으로 나 자신을 변화시킨 일. 어둠의 긴 통로와도 같았던 2020년 나만의 소확행으로 한발 한발 디디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며칠 전 유 퀴즈 온 더 블록을 보다가 새벽 네 시반에 기상한다는 어느 변호사의 말 한마디가 가슴에 와 닿았다. 평범한 사람이 꿈꾸는 특별한 하루와 특별한 사람이 꿈꾸는 평범한 하루의 차이. 나 역시 잔잔하고 평범한 일상에 반전을 꿈꾸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에 무료함과 권태를 느낀다. 나는 평범한 인간이니까. 가끔 내 삶의 큰 변화를 원하지만 정작 나 자신은 언제나 그 자리에 꿈쩍 않고 버티고 있다. 매번 지각하고 과제 제출이 늦는 학생들의 온갖 변명과 사정을 인내심 있게 들어주고는 그건 다 습관이다, 그 나쁜 습관은 고쳐야 한다고 나도 습관처럼 얘기했었다. 고쳐보겠다고 바꿔보겠다고 나 자신과 했던 수많은 약속들이 내 인생 어딘가에서 계류 중인데 늦잠 자는 습관 하나를 못 고쳐서 이렇게 매번 혼나야겠냐고 나는 여전히 아이들을 다그친다. 그걸 고칠 수 있다면 그 아이는 특별한 사람인 것을.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은 그렇게나 힘든 일인 것을. You know that.
변호사의 말에 자극을 받아 오늘로 3일째 새벽 다섯 시 반에 기상하고 있다. 일단 작심삼일은 넘겼으니 시작은 좋은데 솔직히 자신은 없다. 이번이 첫 번째 시도는 아니다. 새벽 감성에 충만해져서 아침 시간을 온전히 나만의 것으로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다만 나는 저혈압이고 아침잠이 많고 약간의 불면으로 일찍 잠드는 것이 힘든 구구절절 사연 많은 인간이라서 수많은 도전의 실패를 합리화 중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연말이고 다가오는 새해에 그래도 이거 하나는 했다는 아주 작은 성취감을 또 한 번 느껴보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과 똑같은 생활 패턴으로는 내 삶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약간의 절실함도 적절히 반영되었다. 침대에서 몸부림치며 힘겹게 일어나는 그 짧은 순간의 선택이 나에게 평범하지만 조금은 긴 하루를 선물해 주고 있다. 덕분에 오늘 또 이렇게 글 한편이 완성되었다. 지금 시간 아침 7시 35분. 이제 출근 준비를 해야 한다. 만약 실패하더라도 내일까지는 버틸 것이다. 2021년 첫날 아침을 온전히 나만의 것으로 느껴보고 싶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