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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미니 Jan 09. 2021

Are you happy?

지금으로부터 거의 20년 전 MBC에서 만원의 행복이란 프로그램을 방영했었다. 만원으로 일주일 버티기 프로젝트에 유명 연예인들이 나와서 그들의 알뜰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리얼리티 비슷한 생활밀착형 프로그램으로 기억한다. (자꾸 옛 생각이 난다. 노화의 증거 혹은 *technophobe의 추억팔이랄까) 암튼 이 프로그램의 취지는 만원으로 일주일을 버티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과 의미를 '행복'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전하고자 했던 것 같다.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이 존재한다는 것을 반강제적인 체험을 통해 잠시나마 느껴보라는 차원에서.

* technophobe : 신기술과 신문물을 두려워(불편해)하는 사람


행복이 뭐 별거냐고 하지만 사실 행복은 정말 별거 이상이다. 살면서 "아 정말 행복해"라고 확신하는 순간들이 매번 있었다고 자부하는 사람 지금 당장 푸쳐 핸섭! 물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망설임 없이 행복하다고 외치는 사람이 항상 주변에 있긴 하다. 그의 말이 입에 밴 습관이든, 맛있다의 동의어이든 암튼 먹을 때마다 행복하다고 외치니 얼마나 부러운 인생인가.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네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것이라는 류의 수없이 많은 인생의 명언들이 수시로 우리의 감성을 자극한다. 그러나 내려놓고 비우고 떠나보내는 그 지리멸렬한 과정을 거쳐도 결국 또 제 자리로 돌아오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인생길에서 우리는 틈만 나면 길을 잃고 헤매기를 반복한다. 행복의 필요조건인 마음 수양에 다다를 때쯤이면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흘러가기를 바라는 나이를 맞이할 것만 같은 인생의 아이러니란. 

나에게 행복이란 이런 것이었다. 눈 앞에 보이지 않지만 발견해야 하는 것. 찰나의 순간 잠시 나타났다가 금방 또 사라져 버리는 것. 다가올 불행에 대한 경계가 항상 함께 하는 것. 그래서 더없이 소중하고 벅찬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 -쓸데없이 거창하고 추상적인, 행복 뒤에 '님'자를 붙여야 할 것만 같은- 나에게도 분명 즐겁고 기쁘고 재미있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런 게 행복인 거야? 행복인 거지? 하고 되묻는 상황이 반복된다.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을 행복이란 말로 표현하기엔 즐거움과 기쁨과 재미를 통해 얻는 만족감 그 이상의 의미부여. 나에겐 그것이 필요하다. 

공부는 열심히 했는데 기억나는 교과 내용은 전무하다. 그래도 매슬로우 욕구 5단계는 머릿속에 잘 각인이 되어 있다. 궁극의 자아실현을 완성하면 최상의 행복이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어서 피라미드의 위로, 위로 그렇게 올라가 보자 다짐하면서. 3단계 정도까지는 오른 줄 알았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다시 1단계로 회귀한 것 같은 느낌이다. 근래에 이게 행복인가 느꼈던 순간이라면 숙면한 다음 날 맛집 예약에 성공해서 줄 선 사람들 뒤로 하고 위풍당당 입장. 이어서 등장한 시그니쳐 메뉴 항공사진 찍고 접시 싹싹 비워 낸 후 인생 뭐 있니. 다음에 또 뭐 먹을까. 하며 친구들과 주고받았던 말. 골치 아픈 생각들 집어치우고 그렇게 나를 위안하고 합리화하는데 행복을 갖다 붙인다면 나는 행복한 사람이 맞다. 그러나 마음 한편으로 여전히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얻고 싶은 것들을 눈 앞에 펼쳐놓게 되면 곧이어 마주하고 싶지 않은 자아 성찰, 자아비판, 자기반성의 시간이 이어진다. 자기만족과 소확행으로도 충분히 파랑새를 만날 수 있다는 위로의 말들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나는 또다시 피라미드 윗 단계를 올려다보고 있다. 조급해하지 말자고 자신을 토닥이면서. 


Pursuit of happiness in 2021.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일상을 기억한다. 나의 경우는 즐거운 순간들은 사진으로, 깔끔하게 정제된 생각들은 발행 글에 담아두었다. 그리고 내면의 고통은 책장 한편 다이어리에 잘 숨겨 놓았다. 프로필 배경은 음식 사진 또는 풍경 사진이 대부분이고 브런치를 통해 발행한 글들은 대부분 교사로서 느끼는 어려움, 자괴감, 학교교육에 대한 애증의 표현들이 주를 이루었다. 다이어리 속의 나는 역시나 처참했다스스로에게 쏟아내는 잔인한 고통의 말들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는 김연수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부정과 비판의 자기 암시. 스스로에게 얼마나 냉정하고 인색했었던가. 두려움에 조급함이 더해지면 최악의 상황에 이른다는데 나는 그 상황을 매번 자초하고 있었다. 다시 또 후회와 자기반성. 뫼비우스의 띠로 걸어 들어간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좀 다르게 나만의 파랑새를 찾아보자고 그렇게 다짐하고 있다. 하고 싶은 거 하고 되고 싶은 거 되고 가지고 싶은 거 갖기 위해서 나는 계속 달려갈 테지만 이번엔 내가 가는 길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나를 아끼고 챙기는 일에 최선을 다해보려 한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을 자신은 없지만 집착할수록 스스로에게 인색해진다는 것을 항상 상기하면서. 너그러움과 이해. 그리고 포용. 상대에게 향하기 전에 나에게 먼저 베풀어야 한다고 되뇌면서. 

우선 나만의 방식으로 만원의 행복 프로그램을 가동 중이다. 만원으로 일주일을 살 수는 없지만 만원의 투자로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을 시작한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유치해 보이지만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치즈케이크 한 조각에 아메리카노를 사서 주기적으로 당 보충을 하니 텐션이 조금씩 살아난다. 내친김에 슬픔으로 얼룩졌던 자아성찰 다이어리의 한 부분을 밀봉하고 새로 펼친 페이지에 Look at the bright side를 헤드라인으로 적어놓는다. 비판적 성향의 나로서는 뻗어 나오는 생각들을 막을 수는 없지만 일단 적어 놓은 문장 뒤로 bright 한 생각들을 담아 문장을 다시 고쳐 써 본다. 몇 년 전부터 미뤄두었던 공부를 시작하면서 오랜만에 스터디 다이어리를 구입한다. 아날로그 갬성을 소환하여 30년 전으로 돌아가 하루 일과표를 작성해보니 기분이 새롭다. 정말 오랜만에 해보는 학생 코스프레. 이런 걸로도 리프레쉬가 된다니 나란 인간도 참 단순하구나.. 이렇게 기분 좋은 노력들이 쌓이다 보면 의심과 걱정과 고민들도 하나씩 지워질까.. 막연하지만 설레는 상상을 하며 나 자신을 한번 더 다독인다.  

행복하고 싶다는 마음은 간절한데 여전히 행복을 느끼는 일은 어색하고 어렵게만 느껴진다. 마음먹기가 성공하려면 실천과 용기가 필요하지만 얼마나 꾸준히 실천할 수 있을지, 결단의 순간에 얼마나 용기 낼 수 있을지 아직은 자신이 없다. 이것 또한 연습만이 살 길인가. 한 가지 다짐하고 또 다짐하는 것은 그저 대단하지 않아도 끊임없이 의미를 부여하면서 나를 격려하는 일. 그것만은 지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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