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미니 Feb 14. 2021

수도자의 마음으로

 대학 시절 성서공부를 시작하면서 알게 된 한 살 위 언니가 있다. 당시 법대생이었던 그녀는 사법고시 공부 중이었다. 신앙심이 깊고 성서 공부에 아주 열심이었다. 그래도 어느 날 갑자기 수녀가 되겠다고 선언할 줄은 몰랐다. 그나마 가까이에서 그녀의 고민과 성찰의 시간을 지켜보았던 탓인지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그녀 역시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축하해준 사람은 나뿐이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뒤로 넘어가셨고 가족들도 받아들이는 데에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봉쇄 수도원에서 4년간의 수도 생활을 마치고 정식 수녀가 된 그녀를 보는 게 낯설고 어색했지만 한 편으로 이제야 딱 맞는 옷을 입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 언니의 삶은 언제나 느닷없다. 3년 정도 본당 생활을 하던 차에 여름휴가를 얻어 명동에서 오랜만에 만났다. 성물방에서 책도 고르고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한참 대화중이었는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내용이 기가 막혔다. 그러니까 일주일 후 로마로 유학을 떠날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다. 일반인들은 상상할 수 없는 범접 불가한 신의 영역이라고나 할까. 황당해하는 내 표정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그녀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혼란스럽고 당황해서 어찌할 줄 모르던.. 그러면서도 발길은 서점을 향해 있었다. 그녀는 이탈리아 초급 회화 책 한 권과 문법책을 사고는 갑자기 다이소엘 가자고 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여행에 필요한 갖가지 물건들을 닥치는 대로 집어 들었다. "나 지금 바로 엄마한테 가야겠어.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다시 연락하자." 그녀는 이 말을 뒤로하고 급하게 전철역으로 뛰어갔다. 

가끔 명동에서 수녀님들의 뒷모습을 볼 때 그녀 생각이 난다. 

 4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카톡과 보이스톡으로 가끔 연락을 주고받긴 했지만 아무래도 같은 한국 하늘 아래 있을 때보다는 소원해진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명절이 다가오거나 해가 바뀔 때면 가족 같은 마음으로 그리움이 밀려온다.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 중인 그녀의 유학 생활은 극기훈련 중의 훈련인 것을. 첫 해에 말도 통하지 않아 헤매다가 맥도널드에 들어가 햄버거를 먹고 있는데 갑자기 집시 여인이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어퍼컷을 날리고는 도망가버렸다고 한다. 경찰이 출동하긴 했지만 외국인이기에 제대로 해결도 못하고 그렇게 흐지브지 되었다는 말을 듣고는 정작 내 분노가 사라지지 않아 씩씩거리자 그녀가 나를 달래주었다. 이제 좀 적응이 되려나 했더니 또 코로나가 터지지 않았던가. 1년 전 뉴스로 접하던 이탈리아의 그 심각했던 상황을 떠올려보면 그곳의 생활이 얼마나 고되었을지 상상이 간다. 그래도 이탈리아어 한마디 모르던 그녀가 지금은 교회법 석사과정을 공부 중이다. 하느님이 베푸신 기적이자 인간승리라고 해야겠다. 

 갑자기 그녀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 졌다. 일 년 만인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필요한 순간 정작 내 옆에 아무도 없을 때의 그 쓸쓸함과 허탈함.. 나와 상관없는 사람에게 무작정 내 속 얘기를 꺼내 놓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때의 그 먹먹함.. 온전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괜찮다 괜찮다 그렇게 위로의 한마디면 충분하다는 간절함이 묻어나는..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고해성사처럼 답답한 마음을 다 쏟아내고 싶었다. 언제나처럼 씩씩하게 전화를 받는 그녀. 버라이어티 했던 지난 일 년의 삶을 5분으로 요약하여 들려준다. 역시나 고행의 시간들이었구나.. "어떻게 지냈어 너는?" 그녀가 질문하는데 나의 고민과 걱정들이 철부지 투정같이 느껴져 잠시 망설인다. 

 "나는.. 마음이 조급해져.. 나이를 먹긴 먹었나 봐.. 자신감도 없고 운도 없고.. 나의 40대가 이렇게 초라할 줄은 몰랐네.. 열심히 살았는데 자꾸 고꾸라지는 느낌이야.. 패배감에 자꾸 두려워져.. 결핍은 채워지지 않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뭐가 이렇게 서럽고 억울한 건지 참아왔던 감정이 눈물샘을 자극한다. 한참을 듣고 있던 그녀가 한마디 한다. 

 "넌 너무 열심히 살았어. 이제는 막살아." "뭐라고?" "막살라고. 그냥 막. 되는 대로. 너 한 번도 그렇게 살아본 적 없잖아. 세상의 가치에 너무 매달리지 말고 그냥 자유롭게, 편하게 살아. 그래도 돼." 

눈물을 닦다가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뭔가 홀리한, 영적인 위로를 기대했는데 막살라니. 이것이 이탈리아에서 개고생 한 현자의 말씀인가. "니 인생을 혼자 버겁게 책임지려고 너무 애쓰지 마. 나도 힘들고 화가 날 땐 하느님 원망하고 혼자 삐지고 별 짓 다 한다. 그리고 내 인생 맡겨 놓았으니 책임지시라고 큰소리친다. 가끔은 그 책임감에서 벗어날 때 마음이 편안해져."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내 인생. 혼자 그 책임을 감당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 일리 있다. 잘 살고 싶어서. 잘 살고 있다는 인정을 받고 싶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조급해하고 집착할수록 내 자아는 점점 더 쪼그라들었던 건 아닌지. 한 곳으로만 질주하는 경주마는 속도를 얻는 대신 과정의 아름다움은 놓치지 않나. 막사는 건 다음 생에나 가능할지 몰라도 책임감 정도는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그녀의 삶을 지켜보고도 왜 내 인생은 내 맘대로 반드시 흘러가야 한다고 집착했는지 모르겠다. 인생은 너무도 배울게 많다. 

작가의 이전글 Are you happy?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