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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미니 Apr 25. 2021

명상 한판 어때요?

 자판을 두드린 지가 근 두 달 만이다. 그동안 좋아하던 책도 끊고 글 쓰는 일은 더더욱 멀리하였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멈춘 것은 아니다. 살기 위해 해야 하는 일.. 의식주 해결과 경제활동을 위해 몸은 여전히 분주하게 움직인다. 바깥세상은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마음속 세상을 좀 더 자주 들여다보게 된 것. 사람들이 말하는 내면의 자아 혹은 마음의 소리라는 것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지 이제 한 달 반 정도 되었다. 어느 책에선가 내가 침묵하면 세상도 침묵하고 내가 수다스러우면 세상도 수다스럽다는 문장을 읽고는 바로 이거야 하면서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두었던 기억이 난다. 모든 일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건 누구나 아는 진실이지만 아무나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쓸쓸한 사실 또한 모두가 알고 있지 않은가. 그동안 무수히 시도했던 내려놓기를 실패하고 포기하려던 그때 코로나 19는 나에게 물리적 명상의 시간을 강제로 안겨주었다. 혼자인 나를 온전히 마주하는 일은 영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강렬하고도 절실한 마음이 있었기에 용기를 내었다. 대단한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기대한 것은 아니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내가 운이 없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생각의 방향을 바꾸어보라는 우주의 시그널임을 증명해보고 싶었다. 우선 내 의식의 자아는 어떤 모습인지 지켜보았다. 내가 만난 내면의 아이는 상처가 많았다. 부정적 태도, 자신감 없음, 인정 욕구에 목말라하는 그 아이를 지켜보자니 나 자신에 대한 연민이 솟구쳤다. 그동안 이 내면의 아이가 끊임없이 나를 괴롭혀왔구나.. 알면서도 외면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진정 나 자신을 보듬어준 적이 있었던가.

 갑자기 왜 명상에 눈을 뜬 것일까. 모든 일이 그렇듯 느닷없이 찾아오는 법은 없다. 의식하지 못했을 뿐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 모양인가. 내 인생은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등의 있어 보이는, 그러나 답 없는 질문에 정답을 찾아보려고 시도했던 적은 많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다 알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으로 철학 책을 꽤나 뒤적였었고, 한때 인생은 결국 팔자인가 싶어 명리학에 빠졌다가 어려운 한자 공부에 막히자 조용히 내려놓았다. 스님, 신부님, 목사님의 좋은 말씀과 강연을 들으며 지친 나를 위로하고 다독이기도 했다. 어쩌면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도 내 안에서 펼쳐지는 수많은 고민과 잡념들, 망상이라고 부를 법한 그 생각의 꼬리들을 정리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나를 사랑하지도 못하면서 스스로에게 집착했던 것일까. 자신에 대한 확신도 없으면서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가에 왜 그토록 매달렸던 것일까. 그동안의 나를 찾는 여정이 실패로 끝났던 이유는 결국 가장 단순하고도 근본적인 조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일이 전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를 중심에 두지 않는 인생은 그 책임감과 욕심이 커질수록 내면의 자아에게 불만과 비판, 시기와 질투를 끊임없이 공급한다. 내가 가진 것이 차고 넘쳐도 나에게 없는 남이 가진 것이 부러운 끝없는 불만족의 세계. 그것이 내가 사는 인생이 되고 만다.  

 우연히 책 읽어주는 유튜버 영상을 듣게 된 후로, 책을 귀로 듣는 게 편해졌다. 책의 중요한 부분만 요약정리해주긴 하지만 목소리가 성우 해도 될 만큼 귀에 착착 감기고 핵심 문장들만 읽어주니 집중도 더 잘된다는 장점이 있다. 시작은 기억나지 않지만 알고리즘의 파도타기는 알아차림, 내려놓음, 긍정 확언, 마음 정화와 같은 명상에 관련된 것들로 이어져 최근 2주간 10권 이상의 명상 관련 책들을 귀로 들었다. 현자들의 가르침은 크게 세 가지 키워드다. 감사. 사랑. 긍정. 어찌 보면 너무도 뻔한 말들이다. 어렸을 때부터 늘 듣던 말이지만 실천하는 삶은 다른 이야기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숙면을 취하게 해 준 침대에 감사하기. 오늘 하루가 다시 시작함에 기뻐하고 어떤 일에도 긍정적으로 대응하기. 나에게 상처를 준 불편한 동료를 사랑으로 감싸기. 어떤 실수와 실패에도 자신을 비난하거나 흠잡지 않기. 나를 공격하는 동료에게 반응하지 않기 등등.. 사실 이 모든 것들은 자신에 대한 확신과 사랑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완전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받아들이는 일. 이것은 하나의 신념과도 같다. 누군가 내 인생은 엉망이야 라고 한다면 잘못된 것은 그 사람의 인생이 아니라 그의 사고방식일 뿐이라는 것. 그 생각의 방향을 완전히 바꿀 때 한계가 없는 성장과 변화가 가능하다고 그들은 말하고 있다. 

 요즘 나는 나의 '말버릇'을 알아차리고 긍정의 말들로 바꾸려고 노력 중이다. 나는 어떤 일을 생각하거나 계획할 때 쉽게 추측하고 단정 짓는 습관이 있는데 대게는 부정적인 예단이다. 그건 아마 어려울 걸, 안될 걸, 힘들걸..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부정의 확언들은 역시나 안 좋은 결과들로 이어졌다. 내가 그럴 줄 알았다.. 내가 뭐랬어.. 이 또한 내가 자주 쓰는 말들이다. "네 말대로 잘 안 돼서, 그래서 좋았니?"  아니. 씁쓸했지. 실망했지. 속상했지. 어쩌면 안 될 것에 대비한 예방주사 차원의 자기 합리화였을 것이다. 덜 실망하고 싶어서. 방어와 대비 차원에서. 돌아보니 부정으로 뒤덮였던 시간들이 너무 아깝다. 대책 없어 보여도, 바보 같아 보여도 앞으로는 무조건 긍정하고 사소한 것에 모두 감사하고 부족한 나 자신을 끊임없이 사랑하면서 내 삶을 실험해 보려고 한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나를 탓하지 말자. 생각의 방향을 바꾸고 긍정의 주문을 외워야 한다. 이제껏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변화가 없다면 방향을 틀어야 한다. 인생은 잘못이 없다. 잘못된 생각만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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