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문제는 그게 아니야
오랜만에 서울행 광역버스에 올라탄다. 아침부터 마음이 답답하여 창밖을 바라보다가 친구에게 카톡 한 줄 남겼다. 마음이 울적하네. 친구는 전날 등산을 빡시게 하고 집에 널브러져 있다고 했다. 그래도 나의 카톡이 신경 쓰였는지 뭐하고 싶은데. 하고 묻는다. 일단 아이스라테 한잔 마시고 싶다 하니 어서 오라고 한다. 집 앞에 있는 스타벅스를 제쳐두고 커피 한잔 마시러 빨간 버스에 몸을 싣는다. 버스가 한강 길을 달린다. 미세먼지로 잔뜩 흐렸던 하늘도 어느새 필터링되고 있다. 기분이가 좋아진다.
친구를 기다리며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맥주집 앞에 걸음을 멈춘다. 우리 커피 말고 맥주 한잔 어때? 꺄아악. 조오치~ 친구는 기다렸다는 듯이 흥분의 리액션을 쏟아낸다. 사실 친구도 나도 맥주 한 캔이 주량인 사람들이다. 대낮에 이렇게 기분을 낸다는 게 주당들이 보기엔 참 귀여울 수도 있겠다. 어쨌든 우리는 과카몰리 나초칩에 수제 맥주 한 잔을 홀짝거리며 서너 병은 마신 것처럼 취기를 만끽한다.
사실 울적한 마음에는 이유가 있다. 잘해보려고 하는데 내 맘 같지 않다. 그것이 사람이든, 상황이든, 일이든, 나는 왜 이럴까. 왜 안될까. 왜 똑같을까. 이런 생각에 빠져들면 답이 없다. 물론 그간의 명상을 통해, 마음공부를 통해 다짐하고 노력했던 시간들 덕분에 예전보다는 덜 허우적댄다. 빠져나오기가 수월해졌다. 그러나 완벽한 명상과 수련을 하더라도 언제든 슬픈 일은 찾아오고 힘든 일은 대기 중이다. 중요한 건 그걸 견뎌내는 단단한 마음이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진공상태를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조금 걷기로 했다. 근처 공원에 다다르니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 붐비는 것이 싫어 한적한 곳을 많이 찾아다녔는데 정말 오랜만에 수많은 인파 속에 섞여있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정한 속도와 거리를 두고 걷고 있다. 한 바퀴 정도 걷다가 자리를 잡아 앉았다. 친구와 나란히 앉아 사람들을 구경한다. 남녀노소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혼자, 또는 무리를 지어 걷고 있다. 사람들을 관찰한다. 불멍, 물멍 하는데 이건 사람 멍이다. 멍하니 그저 바라본다. 다들 행복해 보인다. 그렇지? 그러네. 다들 뭐가 저리도 즐거울까? 저들 눈에는 우리도 행복해 보일걸. 아... 그런가? 나만 빼고 다 행복해 보여서 SNS를 끊었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비교하고 추측하고 예단하는 일은 하지 말자고 해놓고 다시 또 옛 버릇이 나오고 만다.
코로나가 두고 간 고독이라는 시간 속에서 나 자신을 대면하는 일에 이제 조금 익숙해지고 있다. 예민함도 살짝 무뎌지고 부족함을 채우려는 강박도 내려놓고 실망과 상처는 담담하게 받아들이려고 애쓰고 있다. 그렇지만 아주 가끔은 오늘처럼 괜히 한번 센티멘탈해지면서 감정 사치를 부려보고 싶은 날이 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마스크 속으로 들어오는 짭조름한 눈물 한줄기를 자연 건조시키며 다시 또 한강 길을 멍하니 바라본다. 괜찮아. 잘하고 있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