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불러주는 스승의 은혜와 칠판에 가득 적힌 선생님 감사합니다. 교탁 위 화려한 불꽃이 일렁이는 케이크 한판. 카네이션 가슴에 꽂고 아이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6-7년 전쯤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김영란 법이 통과된 후로 카네이션 한 송이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물론 뭘 받아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런 형식상의 겉치레가 없어지니 감사함을 표현할 방법이 없어진 것인지 애초에 감사함이 없었던 것인지 아무튼 모든 것이 사라졌다. 교사들에게 5월 15일은 애써 덤덤한 척, 그러나 외면하고 싶은 그런 날이다. 무신경하게 넘어갈뻔한 이 날에 옛 제자들이 하나 둘 안부 문자를 보내주면 그게 그렇게 고맙고 또 그립다.
교탁 위에 편지지가 굴러다니는데 민망해 죽겠어요. 후배 교사의 푸념이다.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학생회에서 선생님께 감사편지 쓰기 행사를 한다며 반별로 열 장씩 편지지를 놓고 간 모양이다. 아이들이 가져가질 않으니 며칠 째 교탁 위에 방치 중이었다. 후배 교사 말을 듣고 우리 반에 와보니 나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 아.. 이 외면하고 싶은 현실. 이제는 교사만 기억하는 스승의 날인데. 격주로 한번 학교에 오는 아이들과 아직도 친해지는 중에 억지 감사 편지라니.. 학생회의 의도는 알겠다만 서로가 민망할 일은 안 하는 게 낫다.
출근해보니 커피차가 와 있다. 교장선생님이 고심해서 마련한 스승의 날 기념 이벤트라고 했다. 여학생 셋이 지나가며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저거 선생들만 먹는 거래. 선생들은 좋겠다.
서로가 민망할 일은 안 하는 게 낫다. 이대로라면 언젠가 기억 속에 잊힐 기념일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요즘 세상에 어쩌면 자연스러운 변화일 것이다. 기념일이 사라져서 슬픈 게 아니다. 해마다 느껴지는 이 씁쓸함을 이제는 놓아줄 때가 됐다. 교사가 스승으로 존경받는 시대가 다시 오지 않더라도, 여전히 우리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고 묵묵히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