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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미니 Jan 18. 2023

우리는 왜 노들섬에 갔나

극과 극은 통하는 거야

"노들섬에 일출 보러 가지 않을래요?"

"일출? 한강에서?" 

"요즘 MZ들은 해 뜨는 거 보러 멀리 안 간다. 거기 TV에도 나왔는데... 어.. 어 그래.. 런닝맨. 나 거기서 봤어. 벤치 두 개 있는데 거기 똬악 앉아서.. 어때요? 운치 있지?"

"아.. 뭐.. 신선하다... 그래 가보자. 근데 언제?"

"내일!" 

"뭐? 내일 아침?" 

언제나 그렇듯 그녀는 즉흥적이다. 연락 온 시간이 초저녁이니 그나마도 파워 J인 나를 배려한 것이라 하겠다. 늘 미리 계획하고 검색하고 일정을 짜는 일을 반복하는 나와는 정 반대편에 서 있는 그녀다. 뭔가 미리 정하고 시작하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 탓에 불쑥 뭔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특별한 준비 없이 바로 실행해 버리는 그녀이다. 그래서 자신과 보조를 맞춰줄 사람을 찾기보다는 혼자 움직이는 것을 선호하고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에도 여유롭고 관대하다. 하긴 애초에 계획이 없었으니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의 답답함을 느낄 일도 없을 것 같긴 하다. 반대로 나는 계획형 인간이기 때문에 변수를 싫어하고 실수에 민감하다. 일정을 짤 때에도 시간 단위로 쪼개는 걸 좋아하고 사소한 것들도 기록하고 기억해 두려고 애쓴다. 시간 약속이 있으면 당연히 미리 도착하는 스타일이다. 물론 그녀는 약속 시간을 정하는 데 있어서도 매우 창의적이다.

"나랑 약속할 때는 만나는 시간보다 30분 당겨서 정하고 천천히 나와요. 기다리고 있으면 내가 마음이 급해진단 말이야." 

"이게 말이냐 막걸리냐. 그럼 일찍 나오면 되잖아."  

"아.. 그른가.."

다행인 것은 만나기 힘든 그녀를 일단 만나기만 하면 그 시간이 참 유쾌하다. 수다와 대화 어딘가에서 끊김 없이 소통이 이어진다. 극과 극이 만나서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자 이유일 것이다. 


 새벽 6시에 눈을 떴다. 서울의 일출 시간은 7시 45분. 네비에 노들섬을 쳐보니 생각보다 이동 시간이 여유 있다. 그러나 추운데 너무 일찍 가서 기다리지 말자고 생각한 게 패착이었다. 그래도 20분 정도 추가 여유시간을 두고 출발했는데 한강의 여러 대교를 넘어오면서 7시에 다다르자 서서히 차가 막히기 시작했다. 경기도에 정착하고 나서 서울의 출퇴근 시간이 얼마나 헬이었는지 망각하고 만 것이다. 게다가 일출 장소에 좀 더 가까이 주차해보겠다고 네비에도 나오지 않는 제4 주차장을 지도에서 찾아 주소로 입력해서 찾아가는 중이었다. 용산 부근에 도착한 것이 7시 20분쯤이었는데 이때부터 내가 제일 싫어하는 돌발 상황의 연속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안내를 종료합니다"

나는 대교 한가운데에 서 있는데... 도..착? 하필이면 가운데 차선에 있어서 옆도 뒤도 돌아볼 수 없는 신세.. 할 수 있는 건 오직 직진뿐이라 했던가. 빛보다 빠른 손동작으로 네비를 다시 돌려본다. 아 이 방향이네.. 하는데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 도착했는데.. 어디야?"

와.. 나보다 먼저 왔다고? 이거 실화냐.. 일출 보러 왔는데 해가 서쪽에서 뜨는 건가.. 아.. 정신 차려... 딴생각할 때가 아니야.. 

"어.. 나 지금.. 노들섬 못 찾아서.. 어.. 어.. 악.. 나 길 잘못 빠졌어.. 일단 끊어봐."

일산 방향이라는 바닥의 글자를 보는 순간 대상도 없는 허공에 대고 일단 소리를 지른다. 내가 왜 알지도 못하는 동네에 와서 무슨 일출을 보겠다고 뻘짓을 하고 있는 거냐.. 이게 뭐라고.. 20대도 아니고 오늘이 새해 첫날도 아니고 뜬금없이 남들 출근하는 시간에 새벽 댓바람부터 이게 뭔 짓이냐.. 그리고 못 보잖아 일출!!! 지금 7시 40분이라고. 망했네... 젠장... 계획한 일이 틀어졌을 때 성질 더러운 파워 J가 보이는 밑바닥 분노..  

돌고 돌아 그토록 찾아 헤맨 4 주차장이 아닌 서쪽 방향 2 주차장에 차를 대고 무조건 뛰었다. 다행히 그녀는 동쪽 방향을 잘 찾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뻘짓 하나에도 낙담하고 자책하면서 사소한 몸부림에 허덕이는 동안 세상은 밝아졌다. 젠장.. 8시네..

"이제 해 뜬다. 빨리 와. 해 떠!!" 

뭐? 지금 해가 뜬다고?? 아직 희망이 있는 거야? 터벅터벅 걷던 나는 다시 또 뛰기 시작했다. 이런 게 희망고문이란 건가. 

"근데 여기 길이 다 막혀있는데. 어떻게 그쪽으로 넘어가지?"

"어.. 이상하다.. 거기 동상 뒤쪽으로 내려오는 계단이 있었는데.."

"없는데? 못 찾겠어.. 아..."

마지막 고비만 넘기면 오늘의 뻘짓이 그래도 아름답게 마무리될 수 있었는데... 희망고문의 끝은 고문이라는 걸 잊지 말라는 듯이... 도로에 가득 찬 차들의 경적소리를 뒤로 하며 나는 대교 위에서 해를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주변을 한 바퀴 더 서성인 끝에 나는 그녀와 상봉했다. 언제나 그렇듯 해맑은 그녀는 두 손을 격하게 흔들며 서 있었다. 우리는 멀찍이서 서로에게 이쪽으로 어서 오라고 손짓을 했다. 

"뭐 해. 빨리 와. 밥이나 먹으러 가." 

목적 상실. 다음 플랜으로 고. 

"왜~~ 여기 한 바퀴 걷자. 그래도 왔는데 한 번 돌아봐야지. 어차피 오늘은 날이 흐려서 해가 구름 뒤에 숨어있었던 것 같아. 별로야 별로."

목적 변경. 플랜 B 실행. 역시나 유연한 그녀. 부럽다. 저 성격. 

그렇게 한참 걷다 보니 그녀가 말했던 벤치 두 개. 일출 구경의 명당자리가 딱 나타난다. 그런데 벌써 벤치 한 자리는 누군가 선점한 상태.  

"우리 둘이 뒷모습 나오게 사진 좀 찍어달라고 할까?"

말없이 그녀를 쳐다본다. 

"민폐인가?"

격하게 끄덕인다. 

조용히 남은 벤치 하나에 앉아본다. 

"근데 이거... 석양 같지 않아?"

"어... 그러네.. 어이없네..."

끝까지 엉망진창이다. 오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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