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
29살에 사주를 볼 줄 안다는 도장 파는 아저씨를 만났다. 쇼핑몰 시대인 지금에야 생소한 광경이지만, 당시 내가 근무하던 학교에는 도장 가방을 하나 메고 교무실마다 방문하며 도장 필요하신 분~을 외치던 아저씨가 계셨다. 그 지역에서는 꽤 유명하셨는지 모르는 선생님이 없었다. 그리고 그분이 방문할 때면 선생님들이 도장을 사지 않아도 인사를 나누거나 자리에 앉아서 대화를 하는 모습이 종종 보였는데 그게 바로 사주 때문이었다. 아저씨는 재미로, 심심풀이로 하는 간단한 사주풀이라고 겸손하게 말씀하셨지만 주변 선생님들의 설레발 덕분인지 어느 날 정신 차려보니 나도 그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자기 언제 결혼할지 궁금하지 않아? 그냥 재미로 한번 물어봐.. 악마의 속삭임이라고나 할까. 에잇 안 믿어.. 하면서도 막상 뭔지 모를 한자들을 나열하면서 나에 대해 술술 풀어내면 가슴이 철렁하면서 점점 빠져든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등장하는 사주. 거창한 말로는 명리학. 학교를 옮길 때마다 사주를 좀 볼 줄 안다는 사람들이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그들은 항상 말한다. 이것은 학문이고 통계이며 상담학이라고. 맹신까지는 아니어도 일정 부분 인정한다. 인문학적 측면에서도 사주나 명리는 충분히 매력적이고 흥미롭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인생이 도대체 뭐냐는 회의감이 들수록 사주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는 것 같다. 몇 년 전 친한 선생님들 사이에서 난데없이 사주 바람이 불었다. 그즈음이 다들 연애도 잘 안되고 결혼도 못할 것 같고 도대체 내 님은 어디에를 외치던 30대 중후반이었으니 다들 한마음으로 뭐라도 답을 듣고 싶은 심정들이었을 것이다. 남몰래 고뇌하다가도 누군가가 지인에게 사주를 봤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다들 혹하는 마음으로 그럼 나도.. 하는 추진력이 발동하게 되니까. 그러던 어느 날 문자 중독증인 동료 교사가 어디 가서 매번 답을 구하느니 ‘그거 내가 한번 배워서 해보겠소’ 하고 선언하더니 강의도 찾아 듣고 책도 몇 권 읽으면서 제법 공부를 열심히 했더랬다. 워낙 학문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 흡수가 빨랐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깊이 있지는 않지만 적절히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 수 있는 스토리텔러 정도는 되었다. 나는 사주를 조금이나마 공부해봤다는 주변 선생님들에게서 공통점을 한 가지 발견한다. 명리는 인문학이고 사람을 이해하는 학문이라는 것. 결혼도 중요하고 승진도 중요하고 자식이 잘되는 것도 다 좋은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나를 알고 남을 이해하는 것을 통해 더 겸손해지는 것이라고 한다. 사실 거창한 말이다. 우리가 사주를 볼 때는 재물이 어떻고 건강이 어떻고 물질적인 것들을 먼저 따지게 되니까. 나 역시 내가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해 얼마나 좌절했던가. 내 팔자 운운하면서. 얼마 전 문자 중독증 선생님과 오랜만에 통화를 하면서 최근에 인간관계 문제로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흥미로운 것은 자신을 힘들게 하는 그 사람은 토의 성질이라 본인과 상충하더라.. 안 맞는 것을 억지로 바꾸려 애쓰지 말고 받아들이자.. 이렇게 이해하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고 했다. 사주를 이렇게 교육적으로 올바르게 써먹는 모범생을 보았나. 그래도 나는 흔들린다. 답을 찾고 싶으니까. 29살에 그 도장 아저씨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음... 결혼은 아주 늦게 할 것 같다고. 일찍 하면 서로에게 안 좋다고. 아닐 거야 아닐 거야 강하게 부정했었지. 그렇게 강산이 한번 또 바뀌고 이제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된 지금 나는 또 명리학 책을 만지작거린다.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다면서. 나를 다시 한번 들여다보자고. 어떻게 살 것인가 답을 얻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