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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화 Apr 01. 2024

서로의 무기력함을 끊어내기

아이들과 서로의 삶을 나누며 공허함을 채운다.

"선생님~~ 저 숙제해왔어요."

도서관에서 책을 보며, 친구들과 주말 지낸 이야기를 하던 아이들이 재잘재잘 이야기를 시작한다.

"정말? 주말에 놀고 싶었을 텐데 대단하다. 힘들지 않았어?"

"네~ 숙제 두 개나 했어요."

"우와. 정말? 대단하다. 봄아."


길고 길었던 겨울 방학 동안 가장 달라진 모습을 보인 것은 봄이었다.

봄이는 기초학습능력은 지체되어 있지만 매사에 적극적이고 밝고 명랑한 아이였다.

이런 봄이가 달라졌다. 수업 시간은 물론 학교 교육 활동 전반에 걸쳐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봄이의 공허한 눈빛을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그런 봄이의 마음을 열기 위해 서로의 삶을 대화를 나누어 본다.

봄이 어머니는 밤 8시가 다 되어 집에 돌아오시고 하교 후 그 시간까지 봄이는 주로 스마트폰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저녁은 일을 마치고 오시는 엄마가 야식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사 오면 같이 먹다 보니 밤늦게 음식을 먹고 바로 자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방학 동안 체중도 많이 증가했다.

이런 생활 습관이 반복되다 보니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고 학교에 와서도 멍한 모습으로 앉아있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봄이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학기 초 반 아이들의 가정에서의 모습을 이야기해 보니 모두가 하교 후에는 스마트폰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튜브로는 어떤 채널을 즐겨 보는지도 알게 된 후 어떤 내용으로 이루어지는지

직접 검색해서 들어가 봤다가 자극적인 내용들의 스토리 구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초등학생들이 보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내용인데 이 고리를 조금이라도 줄여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우리는 국어, 수학, 영어 학습위주의 과제가 아닌

집에 돌아가서 본 유튜브 채널 적어보기, 만화 프로그램 적기, 때로는 그 좋아요 숫자, 댓글 숫자 적어보기처럼 숙제라고 하기에는 애매하고, 그렇다고 해오지 않으면 선생님에게 조금 눈치가 보이는 그런 숙제가 있다.

밤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돌아오시는 부모님이 봐주지 않으셔도 할 수 있는 그런 숙제들이다.


내가 이 숙제를 통해 바라는 것은 집에 돌아가서도 잠깐이라도 오늘 하루 학교에서의 일상을 떠올려 보는 것, 연필을 들어 보는 것, 가방을 챙기는 것이었다. 이 사소한 습관들을 통해 작은 성취감이 반복적으로 쌓이면

아이들은 지금보다 더 깊이를 지니게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로의 삶을 나누는 숙제가 시작된 지 어느덧 2주가 지났다.

이제는 스스로 하교 후의 일상을  글로 그림으로 풀어오는 솜씨가 제법 늘었다.


봄이는 주말 동안 있었던 이야기에 신이 났다.

공책에 가득히 주말의 일상을 그림으로 채워왔다.


"바닷가에 다녀왔어요. 가서 물고기도 잡고 닭꼬치도 먹고 동생은 딸기 탕후루를 먹었어요.

그리고 그거 뭐더라. 낙지는 아니고 뭐더라."

"낙지 말고 뭘까? 문어?"

"아 아닌데. 아주 작은데. 뭐더라 아~ 기억이 안 나네."

"혹시 주꾸미?"

"아 맞아요. 주꾸미. 그것도 먹었어요."

"정말 즐거웠겠다. 선생님도 주꾸미 요리 좋아하는데 맛있었겠네."

봄이는 이야기를 그치지 않았다. 주꾸미 요리는 고추장과 어떤 재료들이 들어갔는지, 동생이 먹은 탕후루는 어떤 과일로 만든 것이었는지, 그리고 함께 간 오빠들은 타고야 끼를 몇 개씩 먹었는지 아주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평소의 봄이가 아니다.


주말 이야기로 신이 났던 봄이는 수업시간에도 아주 적극적인 모습이었다.


봄이가 돌아간 후 생각해 본다.


봄이를 변하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엄마와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엄마와 하루를 함께 보내며 따뜻함으로 마음을 꽉 채워온 아이의 하루는 걷는 걸음마다 노래고 춤이었던 것이다.

아이는 오늘 엄마와 함께 모래밭에서 놀던 것처럼 내내 신나는 발걸음이었고

그 맑고 명랑한 목소리가 따뜻하게 교실을 가득채워줬다.

봄이는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특별히 원한다고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필요했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교실에서 아이의 삶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는 것이었을 것이다.

봄이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특별히 자리를 마주하고 앉았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컴퓨터 앞에서 자판을 두드리고 눈을 모니터를 보며 입으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아이와 마주하고 앉아서  신이 나서 이야기하는 아이의 눈을 바라보고

함께 웃고 손뼉 치고 깔깔대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너의 작은 이야기에도 귀를 열고 마음을 열고 있음을 마주 앉은 자리로 전했다.


아이를 위해 치밀하고 대단한 계획을 세우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아이의 삶을 궁금해하고 나누는 것. 그것은 내가 충분히 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시간의 나눔이 봄이에게만 활력을 준 것은 아니다.


'잘하고 있는 걸까? 이게 맞는 걸까? 이 아이들이 나랑 함께 하며 잘 자라고 있는 걸까?' 하는 불안이 커져

교실에서의 시간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던 나의 3월을 이겨낸 것도

결국은 봄이 와 삶을 나눈 시간을 통해서였다.

봄이 와 나누던 그 시간은 나의 권태로움과 두려움도 이겨낼 수 있게 되었다.

봄이의 반짝이는 눈 빛과 느리지만 생명이 느끼지는 말에서

'선생님, 함께 있어줘서 고마워요.' 라고 이야기 한다.


아이들을 위한 대단한 프로그램은 자신은 없지만

지금처럼 나의 삶을 내어주고, 아이들의 삶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함께 나누며

그렇게 함께 하고자 한다.


나눌 수 있어서 든든하다.

채워 줄 수 있어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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