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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게 닫힌 문을 활짝 열어둔다.

5년간 근무지에서의 마지막 수업일(2025.1.8.)

by 소화


뉴스에서 대설 주의보가 내렸다는 소식과 재난문자가 계속해서 오더니 기어코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졸업식이 이루어지던 강당에서 바라본 창문 밖의 희뿌연한 것이 안개이려니 했는데, 눈발이 날리는 것이었다.

너무 곱고 차분하게 내리는 눈들이 작은 틈도 허용하지 않고 겹겹이 쌓여 온통 하얀 세상을 만들어 준다.


한 학년도의 마무리가 있는 오늘. 졸업식이 끝나면 종업식이 이루어지고 점심을 먹은 뒤에 아이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물론 곧이어 시작되는 방학 중 학력캠프에서 다시 만나겠지만,

정식 수업일은 오늘이 마지막인 것이다.

이렇게 아이들과 이별을 한다.


3월이 시작되면서 올해는 마지막 해라는 것에 하루하루 주어진 시간들을 소홀히 하고 싶지 않아서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 눈을 맞출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별이 아쉬운 마음은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음을 안다.


나의 교실은 학교의 연못 정원을 바라보는 로열동, 로열 포지션에 위치한다. 봄이면 할미꽃이, 여름에는 수선화가 지천을 하던 연못을 바라보던 것이

학교에서 누릴 수 있는 사치 중 하나였지만 자주 열어두지 못했다.

간유리로 덧대어진 창문을 열어두면 햇살이 강한 날은 아이들이 칠판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고

한낮에는 햇살이 너무 강해서 몸의 반쪽 오른쪽만 뜨거워 책상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시야가 답답하지 않게 반쪽만 열어두고 지내는 것이

연못 정원뷰를 바라보는 최소환의 사치를 누리는 것이었다.

조용히 창문을 활짝 열어본다.

허전하고 서운한 마음을 달래 본다. 눈과 마음에 오래도록 담아 둔다.


종업식이 있던 11시 40분, 시간을 알고 있었지만 화장실에 들러 가느라 1분이 늦었다.

평소 절대 서두르시는 일이 없는 교감 선생님께 전화가 온다. “네~가고 있어요.” 대답과 거의 동시에 종업식이 이루어지는 컴퓨터 실에 도착했다.

‘아, 느낌이 별로 안 좋은데?‘

아무래도 만기가 되어 이동이 확실한 교사들은 인사를 하라고 하시지 않을까 싶다.

역시! 예상이 맞았다.

우리 학교는 봄방학이 없어서, 겨울 방학을 하면 3월이 되어 개학을 하고 아이들과 마주한다.

그러니 2월 방학 중에 이동이 확정되니 아이들과 인사를 나눌 시간이 없다. 이별을 잘하는 것도 살아가는데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내가 당사자가 되니 그냥 홀연히 떠나고 싶어 진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려 하는데 아이들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일 것이 뻔한 것 같다.


역시나 교장 선생님께서 만기가 되어 이동을 하는 나와 다른 선생님들을 앞으로 부르신다.

아이들 얼굴을 보러 나간 순간부터 눈물이 쏟아진다. 목이 메어 어떤 인사도. 할 수 없었다.

맨 앞줄에서 나의 눈물에 충격을 받은 듯한 타조가 멍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눈만 끔뻑 꿈뻑인다.

체격이 또래 친구들보다 월등히 좋은 힘찬이는 맨 뒤에서 눈이 벌게져서 나를 보고있다.

봄이와 사랑이도 눈에 들어온다.

흐르는 눈물을 꾹꾹 누르며 도저히 꺼내어지지 않는 인사를 나누려고 노력했다.

“몸은 멀어지지만 떨어져 있어도 선생님이 너희를 늘 기억하고 응원할게.”라는 말로 마음을 대신한다.

아마 이런 자리가 있는 줄 알았다면 더 멋진 표현을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또 알고 있다. 아무리 멋진 표현도 지금 이 마음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교실로 이동한 뒤 타조가 교실문을 두드리며 들어온다.

“선생님. 나는 선생님이 울고, 다른 학교 간다고 해서 놀랐어요.”

“그랬어 타조야? 선생님이 타조랑 더 공부하고 싶은데 다른 학교 가야 해. 앞으로도 건강하게 잘 지내. 선생님이 응원할게.”

“나는 조금 슬플 것 같아요. 집에 가면 조금 눈물이 날 것 같아요.”

“그랬어? 선생님도 슬퍼.”

“네. 나는 선생님이 아까 다른 학교 간다고 하고 울어서 조금 감동이었어요. 아주 감동이었어요.”

“감동?” 하하하. 역시 흐르던 눈물도 쏙 들어가게 하는 것은 나의 아이들 뿐이다.


‘감동’이라는 표현은 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라고 일장연설을 해줄까 하다

오늘은 그 마음을 그대로 받아준다. 때로는 정확하게 말하지 않아도 마음과 눈으로 느끼는 사랑이 더 크고 확실할 때가 있는 법이니까.

아이들과 함께 했던 매일의 시간이 나에게도 ‘감동‘이라는 단어로 엮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 이 교실에서는 다른 누군가가 이 예쁘고 고운 아이들과 그림을 그려갈 것이다.

짧지 않았던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쉬움 없이 이곳에서 지냈다. 학교에 오는 것이 업을 위한 것이 아닌 사람을 만나러 오는 것 같았다.

다른 이에게도 이 교실이 그러하길 바란다. 다시 설 수 있는 힘이 되고, 희망이 되는 곳이 되기를 기도한다.

이제 활짝 문을 열어두고 다가올 다음 주자를 기다린다.


“환영합니다. 유독 사랑만 가득했던 저의 교실에 잘 오셨습니다. 선생님도 이곳에서 행복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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