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두 번 정도 더 울면 될까?
드디어 발령이 났다. 나는 내가 희망한 학교로 당연히 발령이 났다.
문득 쓰고 보니 ‘드디어’라는 말과 ’당연히‘라는 말이 참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드디어라고 하니 이 날을 기다렸던 것 같이 느껴지지만 그렇지 않다.
그저 막연하게 내신서를 작성했고 이동을 앞두고 있다고 생각하던 것이 ‘공문‘에 찍힌 내 이름을 통해 눈앞에 확실하게 드리워졌다.
‘아 이제 정말 가는구나. 이제 정말 이동하는구나.’
어느 학교로 갈지 대략 알고 있었지만 확실해졌다.
지금 근무하는 곳 보다 10분은 더 시간이 주는 거리인데 왜 마음의 거리는 더 멀게만 느껴지는 것일까?
물론 이런 감정 따위 새 학기가 되면 훌훌 털어버릴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도 함께 가주는 은미가 있어 정말 다행이고 고맙다.
농담으로 막내 동생도 함께 데려간다고 했지만 실은 더 많이 의지할 것이다.
새로 발령받은 학교에 전화드리고 나니 어색한 기운에 마음 한편이 아리다.
때마침 은미에게도 전화가 온다.
목소리가 한바탕 울고 났는지 “언니… 하면서” 울먹인다.
“아니 왜 울어~ 우리 내신 우리 손으로 냈거든? 왜 울어 근데. 알고 있었잖아. 적당히 좀 할래? “
내 마음이 들킬까 싶어 되려 아기처럼 우는 은미를 나무랐다.
숨을 깊게 들이 마신뒤 교감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내가 “교감 선생님~ ” 하기도 전에 교감 선생님만의 그 느낌으로 내 이름만 부르신다.
나는 나를 이름만 딱 불러주시는 교감 선생님이 참 좋다.
하고 싶은 말, 감사했던 마음들을 모두 전하고 싶었지만 목이 메어 할 수 없었다.
그저 나를 아껴주시는 그 마음을 느끼며 그저 “네, 네…” 대답만 해야 했다.
전화를 끊고 다시 교장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교감 선생님과 통화하며 이미 한바탕 울었는데 ‘따르릉~’ 연결음이 들리는 순간부터 목이 메고 눈물이 난다.
역시나 교감 선생님처럼 나를 호칭이 아닌 “윤희~” 하며 부르시는 교장 선생님 목소리를 듣고 나는 전화를 그냥 끊어버리는 대형 사고를 쳤다.
눈물이 나서 나도 모르게 전화를 끊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다시 전화를 드렸다. “통화할 수 있어? 바쁜 거 아니지?” 하시는 말씀에 “아니에요~” 하고는 말을 잊지 못했다.
한동안 말이 없었지만 하고 조용한 가운데 하고 싶은 말, 주고 싶은 마음을 주고받았다.
흔히 학교의 관리자라고 하는 교장, 교감 선생님과 이렇게 깊은 마음을 나누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도 너무 특별한 사이였다.
우리 엄마 아빠도 아닌데 나를 누군가 정말 예뻐해 준다는 것을 충분히 느꼈다. 그 사랑덕에 나는 더 보드라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방학실 날 아이들과 이별하며 울었다.
발령이 난 오늘은 교장, 교감 선생님과 전화로 인사를 나누며 울었다.
이미 다 울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다음이 더 걱정이다.
정말 아끼고 다정했던 나의 언니, 동생들. 동료들이라고 하기엔 그 거리가 너무 먼 것 같아 언니, 동생이라고 부르고 싶은 선생님들.
매일아침 이들이 있는 일터는 삶의 자리였다.
아이가 학교에 가는 것이 즐거워 매일 아침 발걸음이 가벼웠던 것처럼 나도 그랬다.
조금은 더 세련되게 안녕을 전할 순 없을까?
서로의 앞날을 격려해 주고 축복해 주었으니 이제 그만 울어도 되지 않을까?
나는 벌써 그 시간이 두렵다.
정말 확! 대니구 콘서트 예약하고 송별회에 나타나지 말아 버릴까?
조금 더 세련되고 성숙한 어른의 모습으로 안녕을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