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침 출근길, 문득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또 어떤 짜증으로 서로의 마음이 상할까.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무거워 고개를 저었다.
요즘 호돌이는 자주 짜증을 낸다.
말끝마다 화와 울음이 섞여 있다.
참으려 해도 참아지지 않는 마음,
어디에도 토해낼 수 없어 짜증이라는 말로 밀려온다.
그 말들은 나를 향하고, 친구들을 향하고,
아이가 놓인 낯선 환경을 향해 날카롭게 튕겨 나온다.
한 번은 참지 못하고 이렇게 물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짜증을 내는 거야?”
그리고 곧 후회했다.
아이는 그저, 울고 싶었던 거다.
엄마가 보고 싶고, 그리운 거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와 헤어졌고,
하루 이틀이면 만날 줄 알았지만
시간은 흘러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속상하다고, 불안하다고,
마음이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어른도 없고
그럴 언어도 아직 익숙하지 않다.
짜증은 그런 마음들의 얼굴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마음을 보지 못하고
그저 짜증을 참으라고만 했다.
짜증내지 말라고, 모두에게 잘하라고,
속으로는 아이가 잘 견뎌주길 바랐다.
그게 얼마나 무심하고도 일방적인 바람이었는지
지금에서야 알 것 같다.
짜증내지 말라고 말하는 대신
“속상하지?”
“많이 그립지?”
“지금 울고 싶은 거니?”
그렇게 물어보았어야 했다.
잠깐 울어도 괜찮다고, 여긴 괜찮은 곳이라고
조용히 곁에서 말해주었어야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말로 표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먼저, 나부터가
그 감정을 조금 더 정확하게, 조금 더 따뜻하게 봐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다정하게 머무는 일일지 모른다.
그것만으로도 아이는 언젠가,
지금보다는 덜 아픈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