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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은총으로 자랍니다

by 소화

오늘은 종일 종종거리며 다녔다.

허둥지둥, 바쁘게, 숨 가쁘게.

그런데 이상하게 그 발걸음들이 싫지 않았다.

조금은 가벼웠고, 어쩐지 기쁜 마음이 실려 있었던 것 같다.


퇴근 후 아이 저녁을 챙겨주고, 소파에 쓰러지듯 앉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숨만 쉬고 싶었던 저녁.

그때 성당 구역 모임이 있다는 연락이 왔다.

모른 척할까, 그냥 지나칠까 망설이고 있는데 옆에 있던 아이가 말했다.


“엄마, 성당 모임 갔다가 운동 가면 되겠네~”

툭 던진 말 한마디가 이상하게 내 마음을 건드렸다.

‘그래, 오늘은 가야겠다.’

그렇게 나는 이사 온 후 처음으로 구역 모임에 나갔다.


처음 마주한 자매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함께 성경을 읽고, 묵상을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다.

누군가는 삶의 무게를, 누군가는 감사의 순간을 꺼내 놓았다.

그리고 나도 조심스레 지난 한 달을 떠올렸다.


마음속에 오래 머물던 슬픔 하나가 불쑥 떠올랐다.

돌봄을 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아이들.

그 아이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고,

사실은 그 아이들을 외면하는 어른들에게 더 화가 났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들을 위해 단 한 번도 기도하지 않은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나눔을 마치며 말했다.

“원망보다는… 기도해야겠어요.”


그 말을 들은 자매님 한 분이 조용히 말하셨다.

“우리 지금 함께, 그 아이를 위해 함께 기도해요.”

묵주기도 1단을 함께 봉헌하자고 한 것이, 5단으로 이어졌다.

그 순간이 참 따뜻하고 묘하게 눈물겹도록 좋았다.

기도는 마음을 나누는 일이라는 걸,

그 안에서 나도 함께 치유받을 수 있다는 걸

오랜만에 온몸으로 느낀 밤이었다.


혼자 끌어안고 있던 화와 슬픔이

기도 속에서 스르르 풀려나갔다.

기도하는 이들과 함께 있다는 것,

누군가를 위해 기도한다는 것,

그리고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기도로 응답해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여전히 따뜻하고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 아이도, 어쩌면 그 기도의 은총 안에서

조금씩 회복되고, 자라나지 않을까.

돌봄을 받지 못한 채 있는 그대로 버려지는 게 아니라,

어디선가 누군가의 기도 속에 머물 수 있기를.


나는 이제 안다.

아이를 기다려주는 어른이 있다는 것,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옆에 서 주는 어른이 있다는 것이

그 아이의 삶에 얼마나 큰 빛이 되는지를.


오늘 나는 마음속으로 약속했다.

그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그리고 그 곁을 지키는 어른이 되겠다고.


하느님은 이렇게

기도와 사람을 통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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