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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빛과 실’ 아이들의 숨 사이에서

한강 작가의 ‘빛과 실‘을 읽고

by 소화

한강 작가의 《빛과 실》을 읽고, 오랜만에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말보다 더 조용하고, 문장보다 더 단단한 그 마음들이 오래도록 마음속을 울렸다.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문을 통해 보여준 삶과 글쓰기의 태도는 너무도 인상적이었지만,

나는 그보다도 정원일기의 한 구절에 더 오래 멈춰 서 있었다.


칠 년 동안 써온 소설을 완성했다.
USB 메모리를 청바지 호주머니에 넣고 저녁 내내 걸었다.

4월 26일의 기록.

그 장면이 내 삶에도 조용히 내려앉았다.

나는 나의 ‘칠 년’을 되짚어보았다.

나는 교실에 있었다. 아이들의 눈빛과 손끝과 말들 사이에서. 하루하루의 수업을 준비하고,

누군가의 느린 걸음에 마음을 기울이고, 누군가의 작고 여린 성장을 발견하는 것.

그게 나의 루틴이었고, 내가 매일 짜온 ‘실’이었다.


나는 작가처럼 한 문장을 쓰기 위해 시간을 끌어당기는 삶은 살지 못했다.

대신, 한 명의 아이가 말 한마디를 꺼내기까지의 시간을 기다려왔다.

아침마다 교실 문을 열 때, 나는 오늘은 어떤 빛을 만날까 기대했고,

저녁이면 아이들 책가방 속에 조용히 넣어둔 위로와 격려의 실타래가 잘 닿았기를 바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칠 년이라는 시간이 USB 하나에 담긴다는 사실이 참 묘하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나의 칠 년은 어디에 담겨 있을까?

아마도 한 아이의 일기장 속 글씨에, 소풍날 손을 잡고 걷던 길 위에,

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순간순간에 고스란히 담겨 있지 않을까.


나는 아직도 나의 빛과 실을 찾는 중이다.

매일 글을 쓰진 않지만, 아이들을 바라보는 루틴 속에서 내 마음의 실이 조금씩 엮여가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나의 호주머니에도, 말없이 무언가를 품고 천천히 걸을 수 있는 하루가 찾아오기를 바란다.

그 하루가 바로, 내 삶이 한 권의 문장이 되는 날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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