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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들의 메모장이 된다.

by 소화

신문에서 본 한 줄의 글을 메모해 두었다가, 시간이 흘러 결국 책으로 이어진 경험이 있다.

김중혁 작가의 『미묘한 메모의 묘미』였다. 책은 메모를 단순한 기록이 아닌, 다시 살아내는 행위라 말했다.


나는 교실에서 아이들의 말을 관찰하고, 무심코 흘린 말들을 붙잡아 메모한다.

수업 중에 불쑥 튀어나온 농담, 그림책을 읽다가 엉뚱하게 건넨 질문, 그리고 마음 깊은 곳의 그리움이 묻어난 속삭임까지.

그 말들을 기록하는 동안, 나는 아이들의 하루와 삶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선생님, 오늘은 하늘이 딸기맛 같아요.”

“엄마랑 밥 먹고 싶어요.”


이 짧은 말들은 금세 잊힐 수도 있는 순간이지만, 메모해 두면 다시 나를 붙든다.

웃으며 건넨 말 속에 깔린 외로움, 평범한 한마디에 숨어 있는 그리움.

나는 그 말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 조심스레 적어 둔다.

그러다 보면 문득 깨닫는다.

나는 교사이자, 동시에 아이들의 목소리를 대신 기록해 주는 메모장이 되어 주고 있다는 사실을.


그렇게 쌓인 기록은 다시 나를 교실로 데려온다.

수업이 끝난 뒤 홀로 앉아 그 메모들을 읽다 보면, 다음 수업의 길이 보이고,

아이들의 말 한 줄이 또 다른 책을 불러내기도 한다.

작은 메모가 수업의 씨앗이 되고, 아이와 나를 이어주는 다리가 된다.


돌아보니, 나는 아이들의 말을 수집하며 살아왔다.

그 말들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나의 하루를 지켜주는 힘이었다.

웃음 섞인 농담 하나, 그리움 어린 속삭임 하나가 내 삶의 무게를 덜어 주고, 다시 교실에 서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이 면에 다시 마음을 담는 메모를 해본다.

아이들이 흘려 보낸 말들을 잊지 않고 적어 두자고. 언젠가 그 조각들이 서로 연결되어,

아이들의 삶과 나의 삶을 단단하게 이어줄 것이기에.

결국 이 기록들이야말로 나를 지탱해 주는 비빌 언덕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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