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정미소

by 소화

정미소라는 말을 떠올리면 나는 아직도 눈을 번쩍 뜨게 된다.

누군가의 이름처럼 다정하고,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번지는 이름이다.

그 생각 하나가 지금의 나를 이 자리까지 이끌어왔다.


2020년은 코로나가 창궐해 사상 처음으로 학교가 개학하지 못했던 해였다.

아이들은 오지 않았고, 학교는 텅 비어 있었다.

나는 그 해, 3년간의 긴 육아휴직을 끝내고 더는 미룰 수 없어 끌려가듯 복직을 했다.

복직과 동시에 지역 이동을 하게 되었고, 전교생이 30명이 조금 넘는 아주 작은 시골 학교로 발령이 났다.


아이들이 없는 학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기다리는 것.

아이들을 기다렸고, 휴직 3년 동안 잃어버린 학교의 리듬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동료 교사들과는 겨우 통성명만 나눈 채, 마스크를 쓰고 교무실에서 한 칸씩 띄어 앉아야 했던 시간.

점심시간이면 교실에 홀로 앉아 집에서 준비해 온 음식을 간단히 먹고,

소화를 시킬 겸 마을을 한 바퀴씩 걷곤 했다.


그때마다 나를 이끄는 곳이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운영하지 않는 정미소였다.


기계는 오래전에 멈췄지만, 그곳에는 여전히 쌀겨 냄새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멈춰 선 그 정미소가 이 마을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했다.

한 해 농사를 마친 벼가 정미되어 쌀이 되는 과정,

그 소리와 풍경을 통해 올해는 누구네 농사가 잘 되었는지,

어느 집에 어떤 사연이 오갔는지, 그 정미소는 다 알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니 정미소는 곧 그 마을의 이야기였다.


정미소 마당을 한 바퀴 돌고 학교로 돌아오는 길이면, 마을 사람이 아닌 나를 용케 알아보고 말을 걸어오는 분들이 계셨다.


“누구요? 처음 보는 사람이네.”

“안녕하세요. 여기 초등학교에 새로 발령받아 왔어요.”


그러면 걸음 보조기를 잡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던 할머니가 걸음을 멈추고

“아이고, 선생님이시고만.” 하며 환하게 인사를 건네주셨다.


그렇게 나는 오가며 마을과 인사를 나누고, 사람과 이야기를 조금씩 나누었다.

시간은 그렇게 나를 붙잡아 두었고, 나는 그 학교에서 결국 5년을 꽉 채워 근무하고 떠나올 수 있었다.

잊고 지냈던 그 시간이 문득 떠오른 것은

어제, 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 둘째 날 도서관 탐방 중에 방문한

전주 지역의 책방 잘 익은 언어들에서였다.

연수가 열린 지역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라 집어 들게 된

김지연 작가의 산문집 감자꽃.

첫 장을 넘기자마자 마주한 장면이 바로 정미소였다.

사진을 보는 순간, 오래 묻어두었던 기억들이 한꺼번에 고개를 들었다.


내가 왜 매일 정미소로 산책하는 것을 좋아했을까

돌아보면 그 길은 목적지가 있어서가 아니라,

나를 천천히 제자리로 돌려놓는 과정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아이들이 없는 학교에서 하루를 보내고 나서 곧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텅 빈 교실에서 하루 종일 쌓인 정적이 몸보다 마음에 먼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발걸음을 늦추고, 마을 길을 따라 정미소 쪽으로 걸어갔다.


걸음을 옮길수록 생각은 조금씩 느슨해졌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이 시간이 지나가긴 할까? “ 같은 질문들이 바람에 씻기듯 옅어졌다.

정미소에 가까워질 즈음이면 답을 찾으려 애쓰던 마음도 함께 가라앉았다.


마당에 서서 오래 멈춰 있으면 이미 끝난 농사의 시간들이 겹쳐 보였다.

벼가 들어오고, 쌀이 되고, 다시 각자의 집으로 흩어졌을 풍경들.

그 과정을 생각하다 보면 나 역시 지금은 멈춰 있는 것처럼 보여도

언젠가는 다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미소로 가는 산책은 하루를 견뎌낸 나에게 주는 작은 의식이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는 시간, 흔들리는 자신을 다독이며

“그래도 오늘은 여기까지 왔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길.


그래서 나는 매일 정미소로 걸어갔던 것 같다.

그곳이 목적지라서가 아니라, 그 길을 걷는 동안 내 마음이 조금씩 숨을 고를 수 있었기 때문에.


아, 내가 견뎌왔던 시간에도 이야기가 있었구나.

말없이 서 있던 정미소처럼, 나를 붙잡아 주고 기대게 해 준 어떤 풍경이 있었구나.


그 시절의 정미소는 아이들을 기다리며 흔들리던 나에게 아무 말 없이 내어준 비빌 언덕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이렇게 이야기가 되어 다시 나를 앞으로 밀어준다.


정미소가 지금 떠오른 것은, 그곳이 이미 과거의 풍경이 아니라

여전히 나의 삶 안에 남아 있는 그 학교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이곳, 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 배움터에서 나누고 있는 이야기들 역시

훗날의 나에게는 또 하나의 정미소가 될 것이다.

지금은 서로의 말을 듣고, 기록하고, 웃으며 지나가지만 시간이 흐른 뒤 돌아보면

이 자리에서 오간 (치렁치렁: 스무 살 전국초의 빛낸 언어) 이야기들 또한 내 삶을 빻고, 다듬고, 다시 나를 일으켜 세워 준

소중한 이야기의 마당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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