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가 다시 열심히 하고 있는 일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이다.
아이가 글자를 모르던 시절, 나의 육아는 거의 전부 책 읽어주기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루의 시작과 끝, 잠들기 전까지 책이 빠진 시간은 없었다.
엄마로서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고귀한 행위라고 믿었다.
그때 함께 읽었던 그림책들은 지금도 나의 수업 자료가 되고,
아이와 나 사이에 남은 오래된 추억이 되었다.
아이가 스스로 읽기 시작하면서 그 시간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이제 아이의 책 읽기는 온전히 아이의 것이 되었다.
나 역시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생겨 그 변화가 반갑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터 책 읽기는 아이만의 행위로 조용히 미뤄두었다.
그 사이 아이의 독서는 그림책을 지나 학습만화의 터널로 들어갔다.
아이가 책을 들고 앉아 있는데도 결코 아름다워 보이지 않던 장면.
한동안 깊이 빠져 있던 그 시간을 엄마의 호령으로 강제로 끊어내기도 했다.
마지못해 손에서 내려놓은 뒤에도 그래도 계속 읽어온 힘이 남아 있어서인지
아이는 다시 동화책을 집어 들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좋은 책을 권하고 싶다면 먼저 내가 그 책을 알아야 한다.
요즘 아이와 함께 읽고 있는 책은 익히 알려진 『어린 왕자』와 윤일호 작가의 『거의 다 왔어』다.
하루에 많지도 적지도 않게 20분씩 시간을 낸다.
“엄마가 읽어줄까?” 그 말에 아이의 눈이 반짝인다.
내 옆으로 몸을 비비듯 다가와 자연스럽게 기대어 앉는다.
『거의 다 왔어』는 지난주 출장으로 다녀온 장승초등학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곳에서 느꼈던 감동이 아직 가시지 않아
나는 더 실감 나게, 더 마음을 담아 책을 읽었다.
아이도 나도 어느새 책 속의 ‘행복초’ 학생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특히 올 초 전학을 경험한 아이는 주인공이 행복초로 전학을 앞두고 느끼는 마음을
엄마의 목소리로 들으며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잊고 지냈던 시간, 불안과 낯섦을 지나 스스로 그 시간을 견뎌낸 아이의 마음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목소리로 전해진 이야기는 아이의 기억 속에 오래 머문다.
어쩌면 이야기보다그 이야기를 읽어주던 사람의 숨결과 온도가 함께 남을지도 모른다.
아이가 자라며 서로에게 건네는 말은 점점 줄어들고 목소리는 어느새 기능적인 것이 되어 간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책을 펼친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대답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방식으로
마음을 건네기 위해서다.
엄마가 읽어준 이야기가 좋아 이른 아침, 먼저 깨어 책장을 넘기는 아이를 보며
지금 이 시간이 이미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는 이 자리도 자연스럽게 비워지겠지만,
그때까지는 책 한 권과 목소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아이 곁에 조용히 머물러 있으려 한다.
기억 속에 남을 만큼만, 너무 오래도, 너무 짧지도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