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초만 해도 한글도, 수 개념도 전혀 없던 힘찬 호돌이가 이제는 글을 읽는다.
‘줄줄’이라는 표현을 다른 말로 바꿔 보려 했지만, 그만한 말이 없다.
더듬지 않는다. 멈추지 않는다. 막힘이 없다.
받아올림이 있는 덧셈과 뺄셈도 해낸다.
이 한 문장으로 적기엔 너무 큰 변화지만, 교실에서는 그렇게 조용히 쌓였다.
호돌이 스스로도 그걸 아는 눈치다.
“호돌아, 1년 동안 정말 열심히 공부했지?”
“네, 맞아요. 아~~~~”
기분 좋은 탄성이 교실에 길게 남았다.
“지금까지 호돌이가 평생 공부한 시간보다, 올해 공부한 시간이 훨씬 많을걸?”
“물론이죠.”
“어때? 공부해 보니까 할 만하지?”
“네!”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신이 났다.
이 아이는 ‘못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동안 배움의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내가 아주 대단한 걸 한 게 아니다.
도망치지 않게, 흐리지 않게, 끝까지 서 있게, 함께 있기만 했을 뿐이다.
“것봐. 선생님이랑 빡세게 공부한 보람이 있지?”
괜히 생색도 내 본다.
아이도 웃고, 나도 웃는다.
나는 아이들과 늘 그림책으로 온작품 읽기 수업을 한다.
아이들의 배움과 삶을 연결하기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 시간들이 나를 아이들 앞으로 데려다 놓았다.
아이들 앞에 몸도 마음도 서게 만드는 시간.
마주하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무엇이 부족한지, 무엇이 이미 충분한지.
넘치는 것은 무엇이고, 비워야 할 것은 무엇인지.
아이를 읽는다는 건,
아이 곁에 서서 오래 바라보는 일이라는 걸
나는 그 시간들을 통해 배웠다.
아마 나 역시 자라고 있었을 것이다.
아이를 세운 줄 알았는데,
아이에게 기대어 함께 서고 있었던 셈이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살리며,
함께 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