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어놓음의 자리

by 소화

어제 주일 미사 강론의 첫 시작에서 신부님께서는 이렇게 물으셨다.
“좋아하던 것을 못하는 게 더 어려운가요, 아니면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해야 하는 게 더 어려운가요?”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으며 그 질문을 신랑과 아이와 함께 다시 나누었다.
아이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두 번째라고 했고, 신랑과 나는 자연스레 첫 번째를 골랐다.
같은 질문 앞에서 서로 다른 대답을 내놓는 모습이, 각자가 살아온 시간의 모양이 담긴 것 같다.


요즘 며칠, 좋아하던 일들을 조금씩 줄이고 시간을 나누어 써야 할 일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는 일보다,

이미 좋아하고 사랑하던 것을 내려놓는 일이 나에게는 더 어렵게 느껴진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붙들고 있던 작은 위안이었고, 나만의 리듬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는 기쁨도 사실은 그 새벽에 있었다.
마음껏 읽고, 쓰고,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머물 수 있다는 기쁨.

그 시간은 늘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무엇인가를 해내야 하는 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다시 새벽 시간을 새로이 셋팅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붙들고 있는 시간이 아니라, 주님께 먼저 내어드리는 시간이 되도록.

새벽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여전히 성경을 읽는 일이다.
말씀을 소리 내어 읽고, 복음을 따라가며, 성경을 조금씩 필사한다.
몸과 마음을 천천히 돌보며 하루의 첫 문을 여는 이 시간이
다시 ‘해야 할 루틴’이 아니라 ‘머물러도 괜찮은 자리’가 되기를 기도한다.

나는 그동안 시간을 온전히 내 것이라 여기며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러나 오늘, 주님 봉헌 축일의 말씀을 읽으며 마음에 남은 단어는 ‘봉헌’, 곧 ‘내어놓음’이었다.
내 것보다, 내가 만들었다고 여겼던 것들.
그러나 그조차도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라 잠시 맡겨진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오늘은, 다시 돌려드릴 수 있음에 감사하며 이 하루를 봉헌한다.
조금씩, 그렇게 다시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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