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각시들이 다녀간 자리

by 소화

개학하고 며칠 사이, 내 책상 위에는 자꾸 작은 것들이 놓여 있었다.
마치 내가 잠깐 자리를 비웠다 돌아오면 우렁각시들이 다녀간 것처럼.

처음에는 고구마 말랭이였다.
직접 만든 거라며 건네주었다.

“선생님 좋아하실 것 같아서요.”

고구마를 삶고, 썰고, 말리는 시간 동안

문득 나를 떠올렸을 그 마음을 생각한다.

그 말랭이는 괜히 천천히, 오래 씹어 먹게 되었다.

다음 날에는 휴지 한 통이 놓여 있었다.
“써보니까 좋아서.”

좋은 걸 써보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
그 마음이 휴지보다 더 부드럽게 느껴졌다.

또 어떤 날 아침에는 사과주스가 있었다.
출근하자마자 한 모금 마셨더니
몸보다 마음이 먼저 환해졌다.

그리고 오늘은
“선생님 책 많이 읽잖아. 좋아 할 것 같아서 샀어.” 하며 건네준 책 기록장.


창비 어린이에 글 한 꼭지 실렸다고
괜히 방방 떠 있는 나에게
꽃다발을 들고 찾아온 동생까지 있었다.

학교는 어린이들이 주는 힘도 크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주는 힘도 참 어마어마하다.

이렇게 작은 마음들이
내 책상 위를 한 번씩 지나갈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아, 내가 이 교실을
혼자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니구나.

이 공간을 함께 만들어가는
관계의 힘을 다시 느낀다.

사랑받고 있음에 감사한 새학기.


이제, 나만 잘하면 된다.

내가 기대어 설 수 있는 든든한 비빌 언덕들이 이렇게 곁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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