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키우는 말

by 소화

3월 새 학기가 시작되면 학교에서는 진단평가를 본다.
아이들이 지난 한 해 얼마나 자랐는지, 혹은 길고 길었던 겨울방학 동안 얼마나 ‘초기화’되었는지를 살펴보는 시간이다.

천천히 배우는 우리 아이들에게
문제 하나를 더 맞고 틀리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올해 시험지를 받아든 아이들을 보며 가슴이 벅차올랐다.

동그라미가 조금 더 많아서가 아니다. 자신의 이름을 또박또박 써 내려가고

조용히 시험지를 마주하고 앉아 있는 그 모습이 제법 진지하다. 모른다고 해서 금세 포기하지 않는다.

한참을 고개를 기울이며 생각한다.그것이 참 기특하다.

문득 작년 교실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이들은 아침부터 집에 갈 때까지 싸우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수업 시간에 잠시도 가만히 앉아 있는 아이가 없었다.

한 아이를 데려다 앉히면 또 다른 아이가 일어서고, 또 다른 아이는 교실 밖으로 나갔다.

울고 싶었던 날이 절반이었다. 오죽하면 교실 앞문을 잠그고 지냈다.

뒷문 하나만 열어두고 살았다. 혹시라도 교실을 이탈하려는 아이가 있으면 급하게라도 막아 서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그렇게 문 하나만 있는 교실에서 한 해를 살았다.

그런데 아이들이 조금씩 변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고

나를 부르는 말에 온기가 생겼다. 서로를 대하는 모습뿐 아니라 교실의 물건을 다루는 손길도 달라졌다.

화분에 피어난 꽃을 들여다보고 작은 곤충 하나에도 반가워하는 아이들이 되었다.

싸움도 줄었다.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도 이제는 싸움이 아니다.

기특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

시험지와 골똘히 씨름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는 조심스럽게 교실 앞문을 열어 두었다.

아직 교실 밖 공기는 조금 서늘하지만 점심을 먹고 난 오후에는 졸기 좋은 볕이 교실 안으로 길게 들어온다.

열린 문 사이로 바람이 들어온다. 조금 낯설고, 그래서 더 신선한 바람이다.


올해는 아이들과 아이들과 함께 읽는 시를 한 편씩 읽기로 했다.
3월의 시는 이해인의 「나를 키우는 말」이다.



나를 키우는 말


이해인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정말 행복해서
마음에 맑은 샘이 흐르고


고맙다고 말하는 동안은
고마운 마음 새로이 솟아올라
내 마음도 더욱 순해지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잠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마음 한 자락이 환해지고


좋은 말이 나를 키우는 걸
나는 말하면서
다시 알지



아이들과 시를 낭송하며 물었다.

“우리 교실을 키우는 말은 어떤 말일까?”

아이들은 잠깐 생각하더니 하나씩 말했다.

“괜찮아.”
“같이 하자.”
“고마워.”
“미안해.”
“다시 해보자.”


아이들이 변한 것은 서로에게 건네는 말이 조금씩 달라졌다.

작년에는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거의 싸움이었다.

“하지 마.”
“싫어.”
“내 거야.”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아이들 사이에서 다른 말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괜찮아.”
“내가 도와줄게.”
“같이 하자.”

그 작은 말들이 아이들을 조금씩 바꾸고 있었다.


조용히 자신의 일을 하는 아이들을 보며 교실의 문을 모두 열어 둔다.

지난해에는
아이들을 붙잡기 위해 닫아 두었던 문이

이제는 아이들을 맞이하기 위해 열려 있다.

올해 내가 처음 발견한 우리 교실의 변화는 아이들의 시험지가 아니라 교실의 문이 모두 열렸다는 것.

그리고 그 열린 문 사이로 봄이 들어온다.

어쩌면 그 봄바람 속에는 아이들을 조금씩 자라게 하는 말들이 함께 실려 오는지도 모르겠다.


괜찮아.
같이 하자.
다시 해보자.

그 작은 말들이
오늘도 우리 교실을 조금씩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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