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바라던 만큼 엄마가 더 바랬던 일
올 가을은 유독 비가 많이 온다.
새벽녘 비 내리는 소리에 잠을 깨 책상에 앉았다.
평일 공주 생활을 시작하며,
뛸 길이 많이 있음에도 아직 새벽 러닝이나 걷기는 하지 않는다.
혹시라도 아이가 뒤척여 일어났을 때
엄마가 없으면 얼마나 놀랄까 싶어.
유튜브를 보며 요가를 하고,
여유 있게 책을 읽고 적어도 한 편의 생각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새벽에 달리기 못해서 괜챃아?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당연히 괜찮고 말고.
내가 새벽에 달리는 것이
다이어트나 엄청난 근력 운동을 위한 것이었으면 차질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온전히 나를 위한 것 중 하나였으므로
그 대신 다른 활동을 더 깊이 있게 하면 된다.
또 걷기가 주는 기쁨을 저녁 후 시간에 아이와 함께 하고 있으니
그 또한 좋다.
평소보다 이르게 집을 나섰고 아이 학교에도 일찍 도착했다.
오늘은 교문 앞에서 아이만 내려주고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뒤돌아봄 없이 쌩하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주차를 하고 차 시동을 끄고 우산을 쓰고 함께 내렸다.
그리고 아이의 등굣길을 손잡고 함께 걸었다.
이렇게 한 번 데려다주면 습관이 될까 봐
또 바랄까 봐, 이런 우려로 오늘을 지나치는 것이 어리석다는 것을
나는 짧은 8년의 육아를 통해 알았다.
아이를 위해 마음을 내어주는 것
그것은 아무리 해도 해도 부족함이 없는 것이며
그것을 할 수 있는 시간과 여력이 늘 허락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돈 한 푼 들지 않는 아이의 등굣길을 함께 걷는 것도
지난 3월 입학하던 주 삼일인가 밖에 할 수 없지 않았던가.
워킹망의 로망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아이와 오늘 있을 일을 이야기하며 걷는 길은 기대보다 더 다정했다.
아이는 알까?
학교 가는 그 길, 다른 친구들처럼 엄마가 배웅해 주며 나서는 그 길이
네가 그립고 부러워하던 것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엄마도 그립고 부럽던 일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