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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화 Oct 04. 2023

새벽 책 모임

-책은 한 줄도 읽지 않았지만, 꽉 채운 시간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동네 책방의 새벽 책모임 번개 소식

시간은 6시 30분부터 자유롭게 2시간 정도 진행된다고 한다.

평소에도 가고 싶었던 모임인데,

그 시간 새벽 축구를 나가는 신랑을 위해 양보해야 했던 모임이다.

그것마저 내게 달라고 하면 안 될 듯 한 그 시간과 모임


연휴를 하루 앞둔 날 저녁

가족들과 마지막 날을 잘 보내기 위한 우리의 전략 회의 중에도

나의 새벽 책 모임 시간을 지켰다.


사실 이 시간에 나를 붙잡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시간에 일어날 사람이 우리 집에는 없기에 그저 나 혼자 즐기고 오면 되는 것인데

알리고 싶었고 존중받고 싶었다.

또한 옆 침대에 누운 엄마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아도

벌떡 일어나지 않고 그냥 편하게 자라는 아이에 대한 무언의 메시지도 있었다.


새벽 5시 50분

평소와 같은 시간

늘 걷던 길을 걷는다.


다른 점이라고 하면 어깨에 둘러멘 가방과 그 안에 든 두꺼운 책 한 권.


"어떤 책을 읽을까?" 마침 읽던 책을 다 읽었기에

우리 집 책꽂이에 꽂힌 책들을 다시 한 권씩 꺼내 들고

2시간 동안 읽을 책을 고르는 일에 신중을 가했다.


내 가방에 함께 한 책은 '와일드후드'

지난 경계선 학습자 연수 후 받은 책인데

손이 전혀 가지 않던 책을 골랐다.

지금, 이때 시작해서 읽지 않으면 영영 책꽂이 한편을 채울 듯하였기에.

새벽 6시 30분. 이른 시간이다.

그런데도 10명이 모였다. '책'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인사를 나누고, 서로 갖고 온 책을 소개하며 시작되었다.

7시 30분, 8시...

서로 돌아가며 내가 읽을 책, 읽고 있는 책 소개를 나누다 보니

8시 30분.

슬슬 궁금했다.

'시간은 다 되어가는데 책은 언제 읽지?'


그렇게 한 바퀴 돌며 서로의 책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9시 30분.


무려 3시간 동안 책은 펼치지 못했지만 책 이야기를 나누었다.

책과 인생이야기라고 해야겠지.


책 장을 펴고 읽고 싶었지만

이후 일정이 신랑과 아이와 약속된 것이 있어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걸으며 생각했다.


책은 한 줄도 읽지 않았는데,

세 시간이 꽉 차고도 넘치는 책 모임이었구나.

그런데 나 왜 이렇게 또 발걸음에 힘이 넘치는 걸까?

그 시간이 나에게 무엇을 채운 것이지?


조용히 있고 싶어 일어나는 이 새벽,

혼자 머무르고 싶다고 생각되는 책 읽기와, 나를 꺼내는 글쓰기.

숨어있고 싶던 말하기


하고 싶은 것과, 선택해서 하는 것, 그리고 하기 싫은 것을 모두 꺼낸 새벽 책 모임이었지만

그 안에는 책은 잠시 곁에 둔 채 책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가 있었다.


처음 만난 이들과 나눈 시간, 결국 우리는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시간을 채운 것은 책과 함께하는 사람과 이야기였던 것이다.

긴 연휴를 마치고 출근 준비를 한다.

시작도 하기 전에 다이어리에 빼곡히 기록된 10월의 일정, 오늘 하루의 계획들이

빽빽하게 다가오지만

그 또한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


그 이야기들을 만나러 가자.

늦었다.


(어제 나눈 이야기의 책들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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