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화 Oct 26. 2023

스타일리스트가 있는 교사  

늘 중요한 날 의상체크는 그녀에게

아이를 등교시키며 보니,

아주  정직한 검은색 기본 정장 옷차림이 많다.


'아! 교육실습생이구나.'


아이의 학교에 지난부터 교생실습생들이 왔다.

정장보다는 컬러풀한 상의, 청바지등의 옷차림,

 아니 실은 뭘 입어도 예쁠 나이지만

사회의 첫걸음, 그것도 학생들 앞에 서는 선생님으로의 첫걸음이니

그에 걸맞은 옷차림을 입었을 것이다.

누구 하나 그런 차림을 정해준 것도 아닌데

정해진 교본처럼 전해지는 복장의 정석이다.


나의 교생시절 옷차림은 어땠을까?

가만 생각해 보니, 나는 한 번도 검은색 정장을 입지 않았다.

교생 때는 물론 임용고시 면접을 볼 때도

나의 전담 스타일리스트는 나에게 검정을 입히시지 않았다.


온통 검정 사이에 나는 그냥 있어도 눈에 띌 핑크색 재킷을 입었고,

다음 날은 민트색이었던 것 같다.

나는 늘 그랬다.

생각해 보면 저 재킷은 20년이 지난 지금 봐도 촌스럽다는 느낌은 덜하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벌써 20년 가까이 되어가는 나의 교생시절


지난주 중요한 일정을 앞두고

역시 마지막 의상은 나의 스타일리스트에게 확인을 받는다.


나의 전담 스타일리스트: 바로 우리 엄마


그럼 엄마는 늘 이렇게 답하신다.

"보이는 것에 신경 쓰지 말고 내용에 충실해야지.  겉보다 속이 알차야 하는 거야."

라는 말을 하고 그 뒤 그날 나의 의상에 가한 평가가 이루어진다.

 아주 냉정하고 객관적이다.

어울리지 않는 것은 한숨을 쉬고, 가끔은 그냥 누구 줘라. 하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엄마의 반응이 괜찮으면 그날은 발걸음마다 자신감이 붙는다.

혹평을 받은 날에는 교실에서 가급적 나오질 않는다.

엄마의 감각은  60이 훨씬 넘은 지금도 여전히 훌륭하기 때문이다.

지난 주 수업나눔 발표 강사를 준비하며 그날도 의상 체크를 받는다.


나에게 겉모습보다는 속이 알차야 한다는 엄마.


그런 그녀가 딸을 대신해 손주의 학부모 수업공개에 초대받았다.

평소 성격대로 시크하게. "오라면 가야지 뭐." 하시더니

그날 새벽 6시가 조금 넘어 문자가 왔다.


"이 옷 입으면 추워 보이니?"

하하하. 크게 웃었다.


"엄마 옷이 뭐가 중요해. 수업공개는 선생님이 하시는 건데. "


문득, 엄마의 뒷모습을 이렇게 본 것이 얼마만인지.

늘 옆에 서서 걷느라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엄마의 뒷모습이 가을꽃 같다.

세월을 이겨내고 바람에도 흔들림 없이 서있는

계절을 다 이겨낸 아주 강한 꽃

엄마는 그런 꽃의 모습을 하고 있구나.


어느 날, "엄마, 대체 자식은 언제부터 좀 덜 예뻐져?" 묻던 내게

엄마는

"난 네가 40이 넘어도 아직도 정말 예뻐. 젊었을 때 예쁜 옷도 많이 입어둬."


엄마,

가만 보니 나를 이렇게 키워 준건 엄마의 손길이고 정성이야.

내 삶을 알록달록 예쁜 색들로 채워주고

내 꿈을 활짝 펼치고 그릴 수 있게 새하얀 도화지가 되어주고

늘 나에게 곱다, 예쁘다. 이야기해 주었으니까.


이제는 내가 엄마를 동네에서 가장 고운 할머니가 되게 해 줄게.

예쁜 옷도 많이 사주고, 가고 싶은 여행지도 함께 많이 다니고.

사람들이 이런 딸 두어서 부러워하게 해 줄게.


고마워 엄마, 나를 이렇게 고운 마음을 지향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해 줘서.


엄마가 말하는 것처럼

겉모습보다

늘 속이 더 단단하고 예쁜 사람이 되도록 할게


엄마는 내 의상뿐만 아니라

실은

내 마음을 더 곱고 예쁘게 만들어 주는 나의 마음 전담사야.

매거진의 이전글 사람 사는 냄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