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화 Oct 24. 2023

사람 사는 냄새

퇴근한 지 50여분이 지난 지금.


내 앞에서 아이는 갈비와 차돌박이 된장찌개를 맛있게 먹고 있다.

오물오물, 야금야금 씹는 입이 참 사랑스럽다.


돌봄 교실에 들어선 엄마를 보자마자

"엄마~"

"배고프다는 거지?"

"응. 간식 간식 없어?"

"집에 가서 밥 먹어야지. 빨리 가자."


그렇게 집에 와 아이는 저녁을 먹는 중이다.


하루 종일 뛰어노느라 얼마나 배고팠을까?

요즘 돌봄 교실 누나들 사랑을 독차지해서 목소리가 아주 커졌다는 선생님 말씀을 듣고 나니

아이보다 먼저 집에 돌아간 돌봄 교실 누나들에게 

꾸벅 절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다.


점심을 황제처럼 주는 영양선생님 덕에 나는 이 시간에도 배가 포화상태이다.

밥이 모자라기에 고구마를 찌고 오늘 저녁을 해결하려 한다.


신랑과 평일 3~4일 정도 생활공간을 분리했다.

나는 출퇴근 거리가 가까워 정말 만족하는 중이고 신랑도 한편으로는 좋은 점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결혼 후 우리는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봤다.

시차가 정반대인 나라 카타르와 멕시코에서도 떨어져 살아봤고 

수원과 천안 주말 부부도 해 보았다.

중간 지점을 우리의 합숙소처럼 지내보기도 하다

아이를 임신하고는 내내 한 팀이 되었다.

참 다양한 모습으로 살았구나 우리.

8년 만에 또 다른 형태의 가족이 된 우리.

30여분이면 닿을 거리이지만 그 출퇴근 30분을 아끼는 것이 삶의 질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

저녁이 있고, 그 안에 아이와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

산책을 하고, 옛 문화지도 가보고, 책을 읽고, 이야기하고, 때로는 카페도 가고.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신랑과 함께 사는 우리의 원집에서 나는 음식을 하면 그 냄새가 집안에 베지 못하도록 

온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킨다.

오늘처럼 갈비나 청국장처럼 냄새가 심한 요리를 할 때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 냄새마저도 꽁꽁 싸두고 싶어 질 때가 있다.


퇴근 후, 아이와 돌아왔을 때

아침에 우리가 해 먹고 나간 음식의 향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으면

그게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저녁을 먹고도

코를 벌름 벌름거리게 만드는 갈비 냄새가 집안 곳곳에 남아 있어도 그게 그렇게 배부르고 흐뭇할 수 없다.

신랑이 없어도 있는 것 같은 안정감이 든다고 할까?


이 집에서 나는 것 같아 굳이 냄새를 없애려고 애쓰지 않는다.


사람마다 스칠 때마다 나는 그 사람 특유의 향이 있다.

집도 그러할 터.

이 마을 분들에게 

우리 집은 늘 저녁마다 맛있는 냄새가 나는 집이라 불리어졌으면 좋겠다. 

저 집은 식구가 몇이기에 매일 저렇게 요리를 해 먹을까 싶게끔 맛있는 냄새가 나게 해야겠다. 

우리 집 음식 냄새가 창을 통해 나가서 

내일은 나도 이 음식 먹어야지! 생각이 들도록 해야지.


공간을 채우는 것은 

그런 사람 사는 냄새도 한몫 제대로 한다는 것을 느낀다.


오늘 우리의 원집은 그 냄새를 그리워하며

우리를 그리워하겠지. 


자, 이제 내 차례

달콤한 냄새 풍기며 고구마를 먹어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나에게 오는 말을 마음으로 받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