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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화 Oct 28. 2023

정신차렷: 교무가 내 글을 구독하기 시작했다고!  

현실을 지각시키는 이름들의 등장.

어떤 날은 글이 술술 써질 때가 있다.

마치 세상의 모든 감각이 내 손가락에 살아 있듯 타자기 위를 날아다닌다.

반면 한 문장을 적어 내려 가면서 세상의 모든 무게가 다 내게 올 때가 있다.


바로 전 글,

그러니까 나를 하루 브런치 인기 작가로 살게 해 준 '스타일리스트가 있는 교사' 글을 써 내려갈 때는

후자에 가까웠다.


엄마에 대한 이야기,

엄마와 나 사이의 애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잘 풀어갈 수 없었다.

심지어 이 주제는 아이의 수업 공개가 일주일 전에 있었으니 일주일 동안 써 내려가고 싶은 이야기였다.

꾸역꾸역 적다가

심지어 나는 꾸벅꾸벅 졸고,

책상에 엎드려 자다가 아이가 깨워 다시 눈을 떠서 마지막 발행 단추를 누르고서야 저장을 한 글이다.


지울까?

비공개로 할까?

일단 내일 다시 수정하지 뭐. 하고 잠이 든 글.


새벽에 눈을 떠보니

브런치 조회수가 꽤 올랐다.


'응?' 그리고 잊었다.


오전 내내 학예회를 하고 정신없이 보내고 점심이 다되어 핸드폰을 열어보니

조회수가 2000?

200을 잘 못 본 건가 싶었다.

사실 그동안 나는 20만 되어도 아주 행복해하던 방구석 작가였는데 이게 무슨 일이지?


그리고 10분 뒤 3000.


이제 나는 정말 베스트셀러 작가 된 냥,

동료들을 앉혀 놓고 이 기가 막힌 일에 대해 썰을 풀기 시작했다.


"언니가 말이야. 어제 제목을 기가 막히게 뽑았더니.. 조회수가..."

한번 볼래?

한 10분쯤 그 모험담을 푼 것 같은데

조회수가 1만 가까이 되었다.


그 순간부터 내 걸음은 땅을 밟는 것이 아니고 허공을 둥둥 떠 날아다는 것이고

오후에 교장선생님과 동료들과 간 코스모스 꽃 밭의 꽃들은

그날의 나를 축하해 주기 위해 모두 심어 놓은 듯, 온통 내 세상이었다.

마치 이 곳이 팬 사인회장은 아닌지


집에 오자마자 신랑에게 오늘 있었던 일들에 대해 귀가 따갑게 풀었다.

조회수는 자꾸 올라간다.

 

오늘 아침 ㅣ눈을 떠보니 조회수가

3만을 넘었단다.


"자기야. 이리 와봐. 여기 메인에 뜬 오늘의 인기 작가 자기 아니야?"

신랑의 다급한 외침에 핸드폰 화면을 보니 맞다. 내가 맞다.

'총 맞은 것처럼~' 노래 가사가 내 귀에 들려온다.


그렇게 나는 이틀을 브런치 인기 작가로 구름 위에서 살았다.


자꾸만 핸드폰을 본다.

그리고 발견했다.

'이 OO'님이 구독하였습니다.

너무 잘 아는 이름이다.

너무 익숙한 이름이다.


응! 우리 학교 교무.


교무실에서 호들갑 떨며 난리 치던 나를 보고

내 필명을 보고 한껏 놀리던 우리 학교 교무가 내 글을 구독한단다.


띠로리~~~~


드디어 현실을 깨닫는다.

그간 말도 안 되는 조회수에 세상의 모든 페이지가 나를 향한 향 들떠 있던 나를

다시 땅끝으로 주욱 끌고 내려왔다.


무엇보다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T, 그냥 TTTT인 교무가

너무나도 FFFF 인 나의 글들을 보고 얼마나 웃을까 생각하니 자다가 이불킥을 하고 싶어졌다.


잠시 후, 은진이에게도 연락이 왔다.

"언니, 언니 글 구독도 하고 언니덕에 브런치 가입도 했어."


하나 둘, 익숙한 이름들이 나의 구독자에 올라온다.


나는 점점 더 평온을 찾아간다.


나는 지금 다시 나로 돌아왔다.


어제는 한 껏 들떠 내일은 어떤 자극적인 제목을 뽑아 볼까 고민했었지만

드디어...

다시 나의 일상을 바라보기로 했다.

평범한 일상에서도 나를 보드랍게 해 주던 것들을 찾아가던 나의 걸음.

그것이 원래 나의 색깔 아니었던가?


손에 닿지 않는 화려함을 쫓기보다

내게 주어진 것 중에서 아름다움을 만지고 느끼던 사람이 나 아니었던가?


하룻밤 조회수와 라이킷 수, 구독자 수에 흥분해

나는 온데간데없었던 하루는 이제 안녕

다시 나의 보드라움을 깨우는 일상으로 돌아와야 할 때다.


이제 조회수는 현실로 돌아갈 것이다.

연연하지 않고 나는 계속해서 쓰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

마음을 쓰는 사람.

그리고

계속 계속 돈을 쓰는 사람? (이 건 신랑이 굉장히 싫어하겠지만)


고맙다 교무.

지금 이 글도 부디 보고 있길 바라며.


그대의 T스러움이 이럴 때는 참 고맙게 느껴진다.

TT


(그래도, 나는 여전히 베스트작가와, 조회수 몇만, 라이킷 수, 독자를 매우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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