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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화 Nov 02. 2023

마중할 시간

불과, 한 시간 전에 아이 생각난다며 울먹이지 않았던가?

퇴근과 동시에 나를 의자 앞으로 이끄는 날이 있다.

바로, 박진환 선생님의 글쓰기, 국어과 연수가 있는 날.

연수를 듣고 나면 피곤함이 몰려와야 하는데

지난 연수들도 그러했듯

에너지가 충전되는 느낌이다

연수에서 배운 것들을 빠르게 실행해 보고 싶어 머리를 굴린다.


연수 시작 전,

브런치 구독자라며 인사를 드렸다.

(인사드린 독자가 바로 저예요 작가님!)


연수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며

머릿속에는 오늘 글감이 마구 솟아난다.


계획 세우는 것을 잘하는 윤희 물고기답게

운전대를 잡고 이미 계획들을 풀어간다.


첫 번째 계획은 연수를 들으며 했다.

오늘 우리가 한 그림책 활동을

업무와 관련시켜해 보고자 은미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퇴근길 인사가 급해,

내일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자고 하였다.


생각만 해도 재미있고 신난다.

오늘 배운 것을 아이들과 동료들과 나눌 생각을 하니.


두 번째 계획은

내게 주어진 한 시간의 자유시간이다.

생각만 해도 설렌다.


아이가 피아노 학원에 다닌 지 이틀 째.

여덟 살 아이는 친구들보다 학원 문을 늦게 열게 되었다.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입학 전부터 이야기했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기도 했고

한 번 시작하면 끝까지 해야 하니까 네 마음이 변하지는 않는지 잘 살펴보라고 한 것이 어느덧 1년 가까이 되어간다.


아이가 피아노 학원을 간다.

학원에는 혼자 간다.

혼자 수업을 받는다.

그럼 나도 혼자 있게 된다.

응? 내가 혼자 있는다고?

그럼 뭘 해야 할까?

그 시간은 매일 걷기로 했다.

일주일 세 번 한 시간씩 나는 공주 여기저기를 누비며 걸을 것이다.

오늘도 야심 차게 공산성까지 다녀올 계획을 세웠으나.

그 계획은 잠시 뒤로하고

당장 연수의 설렘을  쓰지 않으면 날아가 버릴 것 같아서 계획을 바꾸기로 했다.


생각해 보니,

불과 한 시간 전 그림책 연수를 하며

‘엄마 마중’ 그림책을 만나고

 그 안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를 보며


늘 돌봄 교실에서 친구들이 하나 둘 갈 때

마지막까지 남아서

밖이 보이는 창문에 이마를 맞대고

‘우리 엄마 언제 오나.’ 하고 있다가

엄마랑 눈이 마주치면 잽싸게 가방을 들고 오는 아이.

그 아이를 생각하며

눈물이 울컥했었는데

그랬는데, 한 시간 뒤에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 있구나.


마음은 변함없다.


아이가 학원에 가 있는 동안 혼자 걷고

함께 도서관에 들려 책을 반납하고 빌리고

집에 와 저녁을 먹고 나는 글을 쓰려던 것을

다만 순서를 바꾸었을 뿐.


대신해주고 싶은 것이 많이 있다.


남은 오늘의 계획은 이러하다.

일단 주제가 중구난방이어도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것만으로도

연수의 충만함을 기록하는 것 같고,

아이가 학원에서 끝나면

오늘 연수 중에 나눴던 책들을 빌려와

저녁을 먹고

귤을 까먹으며 아이에게 읽어 줘야지.

아니 함께 그림도 보고, 이야기 나누어 읽기도 해야지.

엄마 마중도 읽고, 고릴라도 다시 보고,

하늘을 나는 모자도 함께 봐야지.


그리고 이야기해 주어야지.

엄마가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연수를 듣느라 조금 늦긴 했지만

연수를 들으면서도

이 책들을 너에게 읽어 주고 싶은 마음,

이야기해 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고.


그럼 오늘 우리의 그림책 이야기도

다르게 풀어가야겠지.


‘엄마 마중’

아이가 마중을 하는 그림이 아닌


학원 앞에서

아이가 언제 나올까 기다리는 엄마의 모습으로.


그리고 제일 끝에 나온 아이 손을 잡고

도서관으로 향하는 아이와 엄마의 이야기로

다시 도서관에서 나올 때

아이와 엄마의 손에는

‘엄마 마중’ 책이 들려 있겠지.


오늘 이것이 내가 아이와 그릴 그림이다.


세상에,

벌써 한 시간이 지났다.


이제 내가 써 내려가야 할 그림책을

만들러 가야 할 시간.


아이를 데리러 가야지.


무지개 물고기 옆 한편도 새롭게 작성한다.


계획을 잘하는 나

계획을 잘 변경하는 나.


아이 마중,

엄마가 간다.

아이와 카페에 나란히 앉아 오늘을 나눈다. 낭독에 맞는 음악도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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