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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화 Nov 08. 2023

남편을 으쓱하게 하는 아내의 역량

모든 것은 쇼핑으로 연결하는 능력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신랑의 얼굴이 평소보다 더 밝다.

기분이 꽤 좋아 보이고

평소 느릿느릿한 걸음의 그가

뒤꿈치가 바닥에 닿지 않을 듯  가볍다.


저녁 준비에 한창인 나를 찾으며

그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 오늘  점심 먹고 산책하다  김선임 님을 만났는데. 당신 이야기를 하더라고.”

“나? 왜?‘

몇 달 전에 지나가다 인사만 했던 그분이 나에 대해서 무슨 이야길 했을까?


“응, 당신 리더십에 장난 아니래.”

“리더십? 내가 거기서 뭐 했어?”

“아. 아니 자기가 테오 친구들  천문대 수업 진행하는데 반장이라며. 그런데  테오 친구 기쁨이 어머님이 당신 리더십이 장난 아니라고 모임이 착착착 진행된다고 이야기하셨대. 그걸 나한테 이야기해 주시더라고.”

“아~ 난 또 뭐라고.”


아이는 신랑 직장에 있는 어린이집을 졸업했다.

그래서 어린이집 친구들 부모님 중 적어도 한 분은 신랑과 직장 동료 들인 셈이다.


올 2월 초, 천문대 팀 수업을 함께 하자기에 신청해 둔 것이 11개월간 대기를 거쳐 드디어 첫 수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내가 팀장은 아니었지만  부탁을 하셨고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기에 “네” 했던 것이다.


리더십을 발휘할 만한 것도 없었다.

팀원 구성도 함께 하고자 했던 분들 12명이 모두 진행하기로 해서 팀 구성도 바로 완료.

사전 모임 참가도 서로 시간과 마음을 배려해서

참석하신 뒤, 보고서 수준의 정리로 우리에게 안내해 주시는 분도 계셨기에 내가 할 일은 그저 일정 안내정도였다.


가장 감동이고 완벽했던 것은 바로 돈문제.

사실 어떤 모임에서 리더를 맡게 되면 제일 어려운 것이 바로 이 회비 문제이다.

이 모임에서 따로 회비를 걷을 일이라고는

아이들 분기별 수업료와 교재비가 전부이지만

이것을 안내하고 수합이 되기까지는 기다림이라는

 시간이 필요하고, 꼭 어느 모임이건 누군가 한 명은

잠깐 잊어서 재 안내를 하곤 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좀 불편하다. (늘 잊는 사람이 나인듯하다.)

그런데 이 모임에서는

‘다음 주까지 회비를 보내주세요. ‘라는 공지가 뜨자마자

1시간도 안되어 모두 완료되었다.


한 명이 입금 안되어 누군가 이름을 써가며 확인했는데도 못 찾았다.

도대체 누가 빠진 것인지 계속 생각해 본 끝 발견한 한 명 바로 나! 내 아들 이름이 없다.

하하하.

그래서 이 회비도 한 시간도 안되어 다 완료되었으니 내가 할 일이라고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던 셈이다.


그런데도 나를 팀장이라는 것으로 치켜세우며 칭찬을 해 주셨던 모양이다.

그 말에 신랑 어깨도 으쓱한 것이다.


우리는 그날 마치 저녁 식사 자리가 세미나 자리인 듯

‘리더십’이라는 주제로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타고난 리더십의 역량이 있지만

누군가의 능력을 믿고 기다리는 것보다

그 역량이 발휘될 수 있도록 함께 해주는 것은

더  중요하고 큰 역할이라는 것.

결국 자리 역시 사람이 만든다는 것이 우리의 대화의 요지였다.


우리 집의 리더는 누구일까?

당연히 신랑이겠지.

아니 늘 내 의견대로 할 때가 많으니 나 일까?

아니면 아이를 많이 고려하게 되니 아이일까?


우리는 각자 한 분야에서는 리더다.

내 의견대로 가정의 많은 것들을 결정하는 것 같아도

자세히 보면 나는 늘 신랑에게 그 선택의 과정과 결과를 의지하고 있으니  신랑이 리더인 듯하다가도

우리 둘 다, 아이의 컨디션과 일정 등을 우선시에 두니 가장 실질적인 리더는 아이인가도 싶다.


아무렴 어때,

우리는 각자의 역량을 발휘하며

집안의 경제, 건강, 웃음의 영역에서 각각 리더역할을 잘하고 있는 것이다.

역시 리더도 중요하지만

각자의 역할을 잘 해낼 때 가장 원활히 그 모임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진지한 이 대화의 주제가 마무리 되어갈 때

나는 신랑에게 물었다.

“오빠, 그런데 잘 생각해 봐. 나 리더십 있다는 말씀만 하시고 다른 말씀은 없으셨어? 그게 끝은 아니잖아?”

“뭐? 그 말씀만 하셨는데.”


“말도 안 돼. 아내가 엄청 미인이시더라. 예쁘다더라.

이런 말씀은 없으셨어. 이상하다. “

“응 전혀.”

“오빠 안 되겠다. 그래도 옛날에는 칭찬 끝에  그런 이야기도 한 번씩 듣곤 했는데. 아무래도 요즘 너무 내 관리에 소홀했나 봐. 오빠 잘하는 것 좀 한 번 하러 가야겠어. 겨울 옷 좀 한 번 사러 가자. 오빠 카드 찬스 어때? “


“대답을 해봐. 왜 대답이 없어.”

“…”


오빠 잘 생각해 봐.

지금은 내가 리더십으로 오빠 어깨 으쓱하게 해 줬지만, 지금 나에게 아주 조금만 투자해 준다면

다음엔 아내 예쁘다는 칭찬으로 당신의 굽은 어깨가 활짝 열릴 거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지?


자, 이번주말엔 쇼핑을 가보자.

내가 리더십을 발휘해서 오빠를 쇼핑몰로 이끌어 줄게.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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