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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화 Nov 30. 2023

두 집 살림 중간 점검

초여름, 공동 출판 계약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 뒤, 브런치 작가가 되어 이곳에 내 삶의 페이지를 한 자리할 수 있게 되었다.

봄과 여름 내내 내 삶의 관심이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의 적응도 아닌, '글쓰기'에 꽂혀 지내던 내게는

정말 방방 뛸만한 기쁨이었다. 


계약서라는 것을 처음 받아 보던 날

진심을 가득 담은 농담으로

"나~ 곧 작업실 얻을 거야. 거기서 글도 많이 쓰고 책도 보고 할 거야."

나의 이 엉뚱한 큰소리에

많은 이들은  '뭐라는 거야~' 하는 반응이었지만

나의 이런 계획을 가장 인정해 주고 심적, 경제적으로 지지해 준 것은 신랑이었다.

평소 출퇴근이 먼 나를 안쓰럽게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내가 직장 근처에 집을 구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은 그의 배려였다. 


그런 응원이 있었기에

내 기준에 꽤 마음에 드는 집을 구했다.


직장과 집의 거리가 멀고 아이 학교도 멀었는데

지금은 시간이 반으로 줄 수 있는 위치였다.  

아이와 둘이 지내기에 적당하고

도서관과 성당이 가깝다. 이 두 가지 만으로도 이미 충분하게 넘쳤다. 


아주 작은 주방이 있고, 아주 작은 거실,  작은 방이 있고

아이가 첼로 연습을 하거나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으로 쓸 곳도 있는 

미니멀하지만 있을 것은 다 있다.


어제는 아이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기 위해 별을 달고, 촛불도 켰으니

이 공간에서 우린 할 것은 다 하고 있는 셈이다.


주택이기에 가끔 곤충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이젠 그러려니 하면서 내보낸다.


모든 것이 만족스럽고 좋지만 딱 하나 아쉬운 것이 있다면 새벽 걷기다.

신랑이 있으면 새벽에 일어나 무작정 나가 걷고 뛰어도 상관없지만

아이와 둘이 지내다 보니 그럴 수 없다.

물론 새벽에 아이는 쿡쿡 찍어도 모를 만큼 깊은 잠이 들었지만 혹시라도 아이가 깨어 찾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대문 밖으로 나가는 것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나의 오랜 새벽 루틴을 다시 세팅해야 했다.

아이와 다시 마음과 몸을 맞추어 가며 오랜 시간 보내온 나의 새벽과는 다른 모습이지만 꽤 괜찮다.


새벽을 맞이하는 마음의 변화.


이전에는 세팅된 값대로 새벽을 맞이했다.

눈을 뜨면 의식의 흐름 없이 반복된 시작으로 성경을 읽고, 인증 방에 올린 뒤

신발을 신고 나간다.

매일 보던 풍경들의 변화를 알아보기도 하고, 묵주기도를 하고, 하루를 시작하며 또 정리하기도 한다.

특별히 다른 내일의 새벽을 그려보기보다는 이미 몸에 잘 맞는 옷이 되어 버린 새벽.


하지만 지금은 공간과 옆에 있어주는 사람의 변화에 나의 새벽 시간을 만든다.

루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이지만, 

이런 변하도 꽤 괜찮다.

조금씩 다른 매일의 새벽을 내가 직접 만들어 가고, 꾸밀 수 있다는 것.

어쩌면 조금 더 새벽을 맞이하는 느낌이랄까? 


새벽을 시작하는 몸의 변화 


매일 새벽 걷기 대신,

월, 금은 신랑이 있기에 새벽에 걸을 수 있고.

화, 목요일은 새벽 요가를 줌으로 시작했다. 새벽 5시 매트를 깔고 한 시간 정도 요가를 한다. 

줌이지만 선생님께서 자세를 잘 봐주시고, 한 시간을 움직이고 마녀 몸에 차가운 기운이 싹 사라진다.

수요일은 집 앞마당과 마당 대문을 열어 둔 채 짧게 오르막 내리막 길을 오간다. 

아이가 일어나 엄마가 없어도 현관문을 열면 엄마가 보일 수 있는 범위까지만 허용한다.

평지를 걷는 것보다 운동이 되고

새벽에 두부 파는 소리, 도토리 묵 파는 소리도 들을 수 있어 정겹다.


운동 시간이 준 만큼 책 읽을 시간이 많이 늘었다.

책을 쌓아놓고 읽을 수 있고, 간단한 글과 메모돌 끄적일 시간이 있다.




아침을 시작하는 아이 맞이하기


평소 아이의 등교 준비는 신랑이 도맡아 했다.

아이가 일어나면 그 큰 아이를 업거나 안고 둘이 낑낑댄다.

이제 30kg이 나가는 아이를 안아주는 게 불안해 보이는데 둘은 그 행동을 아침의식처럼 좋아한다.

내가 운동하고 돌아오거나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

신랑은 아이의 등교를 위해 준비해 놓은 옷을 입히고, 세수와 양치를 하도록 돕는다.

그리고 아이가 세팅이 되면 나에게 보낸다.


지금은 아이가 스스로 씻고 나온다. 


나는 잠자는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고

아이가 부스스 일어나면

"잘 잤어?" 하고 밝은 목소리로 인사하고 꼭 안아준다.


아침을 차려주고, 아이가 옷 입는 것도 봐주고

오늘처럼 추운 날은 양말을 더 끌어당겨 신겨주거나 

절대 아빠는 해주지 못할 

아래 내의를 더 끌어당겨 윗 내의를 쏙 넣어주는 것까지 해 줄 수 있다.

그렇게 속옷을 단단하고 따듯하게 챙겨주었다는 것만 으르도  만족스러운 아침이다.



딱 3개월이 지났다.


괜찮은 아침 생활보다 더 훌륭한 우리의 저녁,

그리고 신랑과 온전히 원팀이 되는 우리의 금토일은 더 괜찮다.

(평일에 이야기 못한 신랑의 이야기를 들어주려면 조금 더 잡혀 있어야 하는 것만 빼고는.)




평생이 아닌, 기약 있는 두 집 살림이라 더 낭만적이고 괜찮을 수 있다.

아니면 어디서든 그것의 가장 좋은 점들을 찾을 수 있는 나의 능력이 참 뛰어나다는 생각도 든다. 


특별할 일 없는 일상 속에서도

귀하고 감사한 것을 찾아본다.


오늘도 내 삶 속으로 많은 경이의 순간들이 다가왔다.

놓치지 말고 하나하나와 눈 마주치며 감사해야지.

내게 와 주어서 고맙다고 인사해야지.


"고마워, 네 덕에 오늘도 내 삶이 특별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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