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화 Dec 08. 2023

엄마도 선생님이랑 똑같은 말 하네

 

"엄마, 나 오늘 학교에서 속상한 일 있었어."

"그랬어? 무슨 일인데?"


"오늘 내가 줄 서있는데서 떠들지 않고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거든. 그랬는데 친구들이 나한테 떠들었다고 했어. 나는 한마디도 안 했는데."

"그랬어? 그래서 속상했어?"

"응 나는 진짜 한 마디도 안 했거든. 목소리도 안 나왔어."


아이는 정말 속이 상하고 억울했는지 눈물을 글썽이며 힘주어 말했다.


"그랬구나. 진짜 속상했겠다. 그런데 아마 평소에 테오가 좀 많이 떠들었나 보다. 친구들이 그 모습이 기억돼서 지금도 테오가 떠들었다고 생각한 것 같아. 친구들이 오해했나 봐. "

여기까지는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우선 아이의 감정을 반영했으니.


눈치 없는 엄마는 2절을 이어갔다.

"테오야. 그래서 엄마가 평소에 이야기한 거야. 이렇게 억울한 일이 생긴다고. 평소의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은 기억해서 네가 하지 않았을 때도 네가 했다고 생각한다고. 엄마가 이야기했던 적 있지?"


"응. 근데 엄마 그거 알아?"

"뭐?"

"방금 엄마가 한 말. 선생님도 똑같이 말하셨어."


그리고는 휙 돌아서는 아이의  모습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조금 더 따뜻하게 아이 마음을 바라봐 주고 안아줄 걸

되려 나의 말에 아이가 더 상처를 받은 것은 아닌지 미안했다.

돌아서는 그 모습이 차갑게 느껴져 눈치를 보는 것도 나였다.


'그냥, 속상했겠다.'에서 끝낼걸.

'아니야. 그럼 너무 아이의 일에 엄마 감정이 동요하는 거 같잖아. 이럴 때 서천석 선생님은 뭐라고 하라고 하셨더라? 오은영 박사님은?' 잠시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오고 간다.


숱한 부모상담의 노하우들은 어디로 갔는지 결국 나도 똑같았다.


아이는 금세 잊은 듯 재잘재잘 이야기를 이어갔지만

오히려 상처받은 것은 나였나 보다.

나는 너무나 뻔한 교과서 같은 대답을 한 나 자신에게 실망을 해서 오히려 말을 멈추었다.


'내가 학교에서나 선생님이지, 집에서도 선생님일 필요는 없는데. 왜 난 이렇게 밖에 말을 못 하는 걸까? 

그냥 1절만 하면 좀 더 멋진 엄마가 되었을 텐데.' 


핸드폰을 켜고 검색창에 써 내려간다.

아이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까? 관련 추천 도서.


관련 도서들의 목록이 쏟아진다.


잠시 멈추었다.


그래, 이 또한 멈추자.

또 책에서 나온 대로, 유명한 박사님이 알려주는 대로 말하려 하지 말고

오늘만큼은 그냥 너와 나,

테오 엄마 소화, 소화 아들 테오. 우리 둘의 색깔만 담아 이야기해보자.


오늘 있었던 서로의 하루를 이야기하며 저녁을 먹고,

과일을 먹으며 또 이야기하고,

함께 나란히 누워 또 이야기하며

그냥 우리의 이야기를 해보자.


선생님의 말도 아닌,

육아 박사님들께 배운 언어도 아닌

그저 네 엄마로서의 말을




                     

매거진의 이전글 고객님, 주문하지 않으신 조식이 준비되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