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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화 Dec 14. 2023

생일, 주고받는 다정함  

어제는 아이의 생일이었다.


평소 가족들의 기념일에는 꽤 신경을 쓰는 나다.

아니 어떤 의미라도 끌어와

아무런 날도 아닌 것을 대단한 날로 만드는 내가

올해는 조용히 보냈다.


지난 주말, 큰엄마와 가족들이 생일상을 기가 막히게 차려줬으니, 당일에는 좀 조용히 넘어가도 되겠다 싶었던 것이다.


매 해 밤을 새워가며 하던 풍선 장식도 없었고

기가 막힌 식탁 위의 한 상도 없었다.

아빠는 시험이 있는 날이라 함께 저녁을 보내기에는 어려웠다.


변하지 않은 것은,  아침 식탁의 미역국과

눈을 깨서 탁자에 앉았을 때 제일 눈의 잘 띄는 곳에 놓아둔 편지 한 통.

모든 과정을 생략하고 축소하더라도

절대 뺄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이 내게는 글로 마음을 전하는 일.

바로 편지 한 통인 셈이다.


아침에 일어난 아이를 향해 달려가

꼭 안아주며

“생일 축하해. 엄마 아들로 와줘서 고마워.” 인사를 하고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서 얼마나 행복한지

세수를 하러 가는 아이의 뒤에 대고 한참을 이야기했다.


식탁에 앉은 아이가 밥을 먹으며

편지로 손이 향한다.


아이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풍선 장식은 없었지만

그래도 엄마의 생일 축하 편지는 있을 것이라고.

그것마저 넘길 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아이는 알았을게다.

아이의 소풍 도시락에 숟가락과 포크는 빼먹더라도 편지는 꼭 넣던 엄마이니까.


밥을 먹으며 편지를 읽던 아이의 눈에

어느새 눈물이 고인다.

“엄마, 나 못 읽겠어. 엄마가 밑에 읽어 주면 안 돼?”

하는 말에 울먹이는 아이를 가슴에 품고

내 마음을 읽어 내려갔다.


그렇게 아이는 훌쩍훌쩍 생일 아침을 맞이했다.


저녁에는 아이가 먹고 싶다는 가락국수를 먹었다.

더 근사한 음식을 먹고 싶었지만

제일 먹고 싶은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탓에

왠지 모를 미안함은 넣어두기로 했다.


가락국수 한 그릇, 아니 두 그릇을 먹고 배가 빵빵해진 아이.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의 축하에 쑥스럽게 답하며

“아, 엄마 하루가 가는 게 너무 아쉬워. 그럼 내 생일이 지나가는 거잖아.”

1분 1초가 흐르는 게 아쉬울 만큼 생일에 흠뻑 취한 아이였다.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 생일은 1년 중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하고 얻을 수 있는 날이니 그럴 수밖에.

그날에 붙은 의미가 조금씩 줄어드는 것은 곧 나이가 들어가는 과정이니 나는 아이가 생일을 오래오래 반기고  기다렸으면 한다.


시험을 끝내고 나온 신랑이 아이와 영상통화를 하며

“ 네가 태어날 때 엄마가 엄청 힘들었어. 엄마에게 제일 고마워하는 날이야.”라고 이야기한다.


내가 해 준 생일 서비스라면

아이가 좋아하는 만화책에 나오는 대사를 맡아

이불속에 쏙 들어가 누워 책을 펼쳐 들고는

나는 남자, 너는 여자

이번에는 역할을 바꾸어 내가 여자, 너는 남자 역할을 했던 것뿐이다.


잠자리에 들 시간

아이에게 다시 한번 축하의 인사를 건네고

나는 책상 앞으로 와 앉았다.

잠시 후 아이가 일기공책을 갖고 오더니 놓고 간다.


“엄마, 여기에 내가 편지 썼으니까 꼭 내일 아침에 봐야 해. 알겠지? “

“어머 정말? 그래 고마워. 엄마가 꼭 내일 읽을게.”

라고 했지만 아이가 불을 끄고 눕자마자 펼쳐 읽었다.

가만 보면 아이가 쓴 문장이 나와 참 닮았다.


최근 읽은 ’ 크라센의 읽기 혁명‘ 에서 읽었던 내용이 떠올랐다.

문체는 읽기에서 나온다.


‘엄마는 나에게 제일 큰 선물이야.’라는 말은

내가 아이의 편지에 늘 써주는 표현인데 그 문장을 아이가 똑같이 쓴다.

다이어리 꾸미기 스탬프를 콕콕 찍어 허전한 곳에 꾸며 놓은 것도,

내가 받고 싶은 선물이 무엇인지 적어 놓은 것도 참 귀여웠다.


엄마의 편지를 자주 받았던 아이의 편지는

학습된 문체이더라도 좋다.

읽고 읽고 반복해서 읽는다.


아이의 짧은 문장이 나를 울린다.


이 아이 참 다정하구나.


‘테오야 생일 축하해.

다정한 아이로 자라렴

다정함이 엄마 아빠, 주변 사람을 따뜻하게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이 곧 네 안에서 단단해져

네 마음을 돌보는데 쓰일 거야.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만지고 돌볼 수 있는 사람은

기쁠 때는 마음껏 기쁘고, 슬플 때는 그 슬픔조차도 네 스스로 위로하고 다스릴  수 있거든.  

그 다정함으로 네 마음을 제일 만져주며 살아가렴.


엄마가 살아보니

다정함이 내 안에 있다면

그것이 우리의 삶에 늘  찾아오더라.

자연의 모습으로, 사람의 모습으로 때로는 이런 편지로. 다정함을 자주 만나면 네 삶이 곧 더 보드랍고

따뜻해질 거야.


곧 네 스스로

너의 삶을 보드랍고 따뜻하게 만들어 갈 수 있단다.


다정한 네가

엄마에게 온 것처럼 말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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