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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화 Dec 18. 2023

교사인 나에게 교육에 관한 숙제를 내준 신랑

듣고 보며 맞는 말


자녀 교육의 철학이라 할 것도 없다.

아무것도 한 게 없으니


아이 나이 여덟 살.

내가 학교에서 하는 것 반만 이라도 아이에게 했다면

아이에게는 조금 덜 미안할 수도 있다.



일주일에  딱 한 번

일요일 아침 20분 정도 받아쓰기 한번 해보는 것이

내가 아이와 하는 학습이 전부다.


내가 남보다 조금 더 열심히 했거나

소홀하지 않았던 것이 있다면

꾸준히 읽어주기,

도서관, 책방과 가까이 지낸 것.

그리고 여행.

이 정도라 할 수 있다.


책은 정말 열심히 읽어 주었다.

읽어주었다기보다는 내가 본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내가 읽고 싶은 것을 소리 내어 읽으니

아이가 들었다.

그러니 이 또한 내가 아이를 위해 한 것이라 할 수 없다


교육에 있어서 아직도 80년대에 머물러 있는 나는

AI, SW교육이 강화된다고 하지만

그 변화가 썩 반갑지는 않다.

2022 개정교육과정,
그리고 미래교육이 나아갈 방향은
학습자 맞춤형의 깊이 있는 학습이며
깊이 있는 학습은 국어, 수학, 디지털 학습을
  포함한다.

아직도 내게는 종이책이 우선이고,

만남이 있는 교육이 우선이다.

디지털은 어디까지나 보조로 남겨두고 싶은 마음이다.


이런 아이가 1년 동안 방과후학교에서 코딩 수업을 받았다.

아빠가 컴퓨터로 하는 것을 보기도 하고

 함께 코딩 프로그램을 해 본 경험이 있었기에 아이는 방과후학교 수업을 정할 때

코딩을 하고 싶다고 했다.


사실 별 기대 없었다.

그저 컴퓨터를 끄고 키는 것 정도만 배워도 되겠지 싶은 마음이었고,  돌봄 교실에서 엄마가 퇴근할 때까지 있어야 하는 아이를 위해 지루한 시간을 넘어가는 하나의 과정이기도 했다.


처음 수업을 들었던 3월

방과 후 강사님께 “컴퓨터를 끄고 키고, 마우스를 만지는 것은 어려워하지만 재미있어해요.”라는 피드백을 받았다.


‘그래 그것이라도 배워두면 좋겠지.’


컴퓨터를 끄고 키는 것도 모르던 아이가

1년 동안 꾸준히 방과 후 수업을 듣고

아빠가 집에서 하는 것을 지켜보거나

함께 해보며 그 성장을 조금씩 볼 수 있었다.


1년의 방과후 학교 수업을 마치고 수업하던 교구를 갖고 온 주말.

집에서 심심해서 할 것이 없는 아이는

수업을 하던 교구를 꺼내 만들고

프로그램에 들어가 설계를 하더니

게임을 만들어서 하는 것이다.


영상 시청만큼이나 게임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을 알지만 애써 모른척하곤 했다.

언젠가는 하게 될 텐데 최대한 미루고 싶었던 마음이었는데

게임을 만들어서 한다니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디지털 기기 학습이라면 얼굴색부터 변하던 나도

고슴도치 엄마인지라

아이의 모습을 보니 눈이 커지며 신랑을 호들갑스럽게 불렀다.


“여보, 이리 좀 와바. 승후가 직접 게임을 만들었어.”


우리 부부. 나란히 서서 아이가 만든 게임을 구경한다.

“엄마도 한 판만 해 볼게.”

“그래 좋아.”

생각보다 쉽지 않네. 엄마는 미션 실패

아빠는 단 번에 성공한다.


아이는 의욕이 불타 더 어렵게 만들겠다며

다시 컴퓨터 앞에 앉는다.

(이게 맞는 건가 싶지만)


신랑이 조용히 내게 말한다.


“내가 말한 게 이거였어.

정보의 사용자가 되지 말고 생산자가 되어야 한다고.  학습도 아이가 수동적인 것보다 직접 생산할 수 있는 진짜 공부를 하고

유튜브 시청도 아이가 사용자가 되기보다 생산자가 될 수 있게끔 해야 한다고. 그게 진짜 교육이지.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거나 미루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아이가 생산자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게 무엇인지 그 길을 같이 생각해 보자. “


분명, 같이 생각해 보자고 했는데

나는 왜 숙제를 받은 느낌인 걸까?


숙제를 받은 나는 우선 곱씹어 본다.

‘사용자가 아닌 생산자가 되는 공부’

그게 뭘까?

나는 지금 내 아이에게, 나의 학교 아이들에게

그런 교육을 하고 있는 걸까?


숙제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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