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기저귀가 내 인생에 준 영향
육아템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잘 정리한 편이다.
특별히 산 것도 없다.
장난감은 대부분 장난감 도서관에서 빌려다 썼고,
옷도 입고 두 살 터울의 조카나 후배들에게 바로 보냈다.
그런데 유독 애착을 보여 아직도 못 버리고 나의 옷장의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천 기저귀.
나는 아이를 이 천기저귀로 키웠다.
백일 무렵 기저귀를 가는 요령도 생기고 패턴도 생긴 후 시작하여 24개월 정도까지 사용하다
어린이집에 가면서 시판 기저귀에 적응을 시켰다.
많은 장난감이 아이의 순간을 지나갔다면 이 기저귀만큼은 아이의 영아기의 오랜 시간을 함께 했다.
다시 쓸 아이도 없고, 내가 쓸 물건도 아닌데 나는 그것이 참 소중하다.
그것이 나를 지금으로 이끈 힘이 있다고 믿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무슨 보물단지라고 버리지를 못하는 건지
그 사이 이사를 두 번 하는 동안에도 아이의 물건 중 꿋꿋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참 대단하다.
졸업과 동시에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늘 엄마 아빠가 해주는 밥을 얻어먹고 다니던 내가
내 살림을 꾸리는 것에 재미가 생겼다.
엄마가 결혼하며 만들어 준 소창 행주를 밤마다 뽀얗게 삶아 놓으면 그것이 얼마나 큰 행복으로 다가왔는지
그 행복을 맞보려고 더 많은 삶을 거리들을 만들어내기도 한 듯하다.
천 기저귀를 쓰게 된 것은 엄마의 추천이었다.
어렵지 않다는 그 말에 이끌려 정보를 찾다 보니 초보엄마의 열정으로 아이를 위해 좋다는 것은 무엇이든 다 해줄 열정이 있을 때이니 어려움보다는 아이를 위함의 마음이 컸기도 했다.
하다 보니 생각보다 할 만했고 괜찮았다.
어렵지 않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특별히 뭐가 어려운지 몰라서 "글쎄, 할만한 데."라고 말했다.
이것은 내가 시판 기저귀를 사용해보지 않아서 잘 몰라서 하는 말일 수도 있다.
천기저귀를 사용을 시작하며 나는 건강과 환경에 관한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선택해서 찾아보는 정보가 나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의 먹거리, 입을 거리, 환경이 우리를 많이 위협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던 것 같다.
그 천기저귀가 나를 '생긴 것과 다르게 환경에 관심을 갖는 사람'으로 이끌었다.
물론 이 이미지라는 것, 그리고 실제로도 나는 꾸미는 것을 좋아하고 물욕도 많아서 대단한 실천가는 아니지만 끊임없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고
특히 아이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어야 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
그 천기저귀를 통해 환경에 대한 관심과 공부로 복직을 하며
전문적인 환경교육연구회를 찾아 '지구 하자'의 회원이 되었다.
전국의 20여 명의 선생님들과 함께하는 두 번의 전체회의, 중간중간 자료 제작을 위한 소모임 회의는
도무지 나 같은 사람은 따라갈 수 없는 흐름이지만 환경교육을 위해 이렇게 노력하는 선생님들과
비슷하게 발맞추어 간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시간이다.
그 시간 속에 매 학기 적어도 2~3개의 교육자료를 만들어 배포하였고
나는 그 흐름에 놓치지 않기 위해
대단한 실천가는 못되더라도 꾸준히 환경교육, 환경에 관련된 자료와 책을 찾아 읽고 있다.
지난해에는 연구회 선생님들 몇 분과 함께 출판물을 발간하기도 했으니
기저귀 하나가 갖고 온 변화가 참 대단하다.
평소에는 줌 회의를 할 때에는 늘 이어폰을 꽂고 한다.
다른 가족들에게 시끄러울까 싶어 하는 조심스러운 행동이었는데
오늘은 이어폰을 찾으러 가기 귀찮아 사운드를 켠 채로 회의에 참여했다.
회의가 끝날 무렵 이어진 도서 소모임 소개를 듣던 신랑이
"그 책 나도 한 번 읽어봐야겠다."라고 한다.
책 모임을 소개하시는 선생님의 열정이 그의 마음을 이끌었겠지만 그 마음의 변화가 고맙게 느껴졌다.
소모임에서 함께 할 책 '김산하 작가의 야생 학교' 책을 주문하고
우선 내 책꽂이에 있는 많은 책들 중
그가 입문서로 읽기 편한 몇 권을 골라 권했다.
에너지 정책을 누구보다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업무를 하고 있는 신랑.
그는 에너지를 기후위기, 환경보다는 수치화하여 받아들이는 편이다.
이 오묘한 차이가 나와 그가 에너지, 기후위기를 생각하는 것이 다를 때가 있다.
그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관심을 갖는 사람 한 명이 생기는 것만으로도
환경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우리 편이 생기는 것이다.
천기저귀 육아
지구 하자 환경교육 연구회
그 힘을 바탕으로 첫 출간
그리고 가정 안에서의 연대
기저귀 하나가 나를 나아가게 해 주는 힘을 주었다.
시간이 오래 지났어도 해짐 없이 탄탄한 저 기저귀 천들의 힘들처럼 질기고 질기게
나를 환경교육과 멀어지지 않도록 해준다.
나를 변화하는 것은 생각보다 특별하지 않지만
그것을 채워주는 연대의 힘이 있다면 그 변화는 특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