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아이의 반경은 점점 넓어진다

아이의 반경은 점점 넓어진다. 주먹만한 내 자궁을 박만큼이나 부풀어 놓더니 결국은 탯줄을 끊어내고야 말았다. 그래도 한동안은 속싸개에 폭 싸여있더니 서서히 팔을 움직이고 다리를 바둥거리다가 뒤집고 기어서 온 집안을 다니기 시작했다. 곧 수직으로도 반경은 넓어져서 아이는 일어나 앉았고 잡고 섰고 걸었다. 여기에 속도가 더해지는 것도 금방이었다. 아이는 친구들과 함께 뛰고 킥보드를 타고 자전거 패달을 구른다. 


내 시야에서 아이가 벗어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볼 수 없었지만 모든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던 임신 시절부터 꼬박 42개월을 곁에 두었다가 유치원에 보냈다. 나 대신 선생님이 아이의 일거수 일투족을 살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잠깐, 이제 주말에 놀이터에 나가서도 아이는 친구들과 저 멀리 몰려가서 내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소꿉놀이를 한다. 

Photo by Jerry Wang on Unsplash


아이는 이제 곧 학교에 갈 것이다. 나는 그 학교 몇 층에 몇 학년 교실이 있는지 다 모른 채 아이가 이야기해주는 학교 생활로 추측을 해야한다. 아이의 교우관계도 내가 이름을 채 외우기 전에 넓어질 것이고 손 끝에서 통하는 온라인 세계까지 더한다면 아이는 곧 전 세계를 (간접) 경험할 것 이다. 


시골에 살았던 엄마와는 달리 나는 친구들과 버스를 타고 나가 시내에서 놀다 들어왔다. 그런 나와는 또 다르게 아이는 휴대폰을 가지고 친구들과 메타버스에서 다른 나라 아이들을 만날 것이다. 엄마는 초등학교만 간신히 졸업했고 나는 대학을 나왔다. 내 아이는 어쩌면 학위가 아닌, 다른 방식의 배움을 추구할지도 모른다. 결혼에 대해서도 돈에 대해서도 우리는 서로 다른 시공간을 겪을 것이다. 


아이의 반경이 넓어지는 만큼 아이의 세계 속 내 존재감은 희미해진다. 나의 엄마도 나에게 그랬다. 모든 딸이 모든 엄마에게 그랬다. 다만 그 엄마에게 딸의 존재감이 희미해지는 날은 없을 것이다. 나도 나의 엄마에게 그럴 것이다. 

Photo by Annie Spratt on Unsplash


지금 나에게는 내년에 아이가 입학할 학교가 검은 숲처럼 느껴진다. 도무지 그 속을 알 수 없는, 그곳에 다녀왔다는 사람 얘기를 들어도 다 파악이 되지 않는 검은 숲. 내 아이가 곧 그곳으로 걸어들어간다. 내가 고르지 않고 내가 꼼꼼히 살펴보지도 않은, 곳. 나는 커다란 가방을 메고서 그 숲으로 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봐야 한다. 그것이 내 몫이다. 


아이의 반경은 점점 넓어진다. 언젠가는 아이의 내면이 검은 숲처럼 우거질 것이다. 나는 그 주변에서 길을 잃기도 하고 큰 소리로 아이의 이름을 부르기도 하겠지. 때로는 아이의 대답이 들리고 때로는 내 외침조차 삼켜질 것이다. 


나에게도 그 숲이 있다. 그 숲에서 내 아이가 나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