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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나와 딸 (1)

MBTI가 바뀌었다

나의 MBTI는 INTJ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에너지를 회복하고 구체적인 묘사보다는 직관적인 한 두 단어를 선호한다. 문제가 생겼을 때는 공감보다 해결책 제시가 앞서고, 어느 정도 계획을 세워두어야 마음이 편해진다. 

MBTI를 알고 나서 나는 나를 더 이해할 수 있었고 내버려둘 수 있었다. 왜 다른 사람과 같지 않은지, 다른 사람처럼 쉽게 친해지고 재미있게 말하며 마음을 읽어주고 여유로울 수는 없는건지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런데 딸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나의 INTJ가 위협받고 있다. 


매순간 엄마를 호명하는 딸 덕분에 혼자 있을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보다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는 질문에는 내 어휘력을 짜 내고 그 중에 어려운 말을 쉬운 말로 치환해서 설명한다. 유치원에서 있었던 속상한 일에는 "그럴 땐 선생님한테 얘기하라니까."라는 말보다 먼저 "속상했겠구나"를 내뱉어야 저녁식사 자리가 훈훈할 수 있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하는 모든 시간에 계획이란, 내년부터는 다이어트 해야지, 라는 말보다도 못한 의식의 흐름일 뿐이다. 


이런 변화가 그리 싫지 않다는 게 더 놀랍다. 


각자 자기 일을 하다가 눈만 마주쳐도 웃으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딸 덕분에 나도 사랑한다는 말이 쉬워졌다. 툭하면 안아줘, 하며 다가오는 딸 아이의 작고 보드라운 몸을 안는 것은 반신욕보다도 좋은 느낌이다. 친구에게 쓸 편지 속 글자가 틀렸다면서 서럽게 우는 아이를 보며 나는 '서러움'이라는 단어를 새롭게 정의한다. 아이의 모든 표현은 냉소적인 나를 허물어뜨린다. 


그래서 생각해봤다. 나는 원래부터 INTJ였을까. 


어릴 적 기억 속에는 사랑한다는 말이 없다. 할 수 있을거야, 힘내 라는 말이나 괜찮아, 속상하면 엄마아빠한테 다 말해, 많이 속상하구나 등등 이런 비슷한 말도 들어본 기억이 없다. 언제나 그 정도로 힘들어해서 되겠니, 더 큰 사람이 되려면 달리 생각해야지, 이런 말이 오갔다. 

스킨십도 마찬가지다. 돌 즈음 찍었다던 사진 속 나는 아빠와 뽀뽀를 하고 있지만, 나의 기억에 남아 있는 아빠와의 스킨십은 거친 악수 정도다. 내가 조금씩 변한 후에는 내가 먼저 안아드렸다. 엄마하고는 지금도 손을 잡거나 안는 일이 없다. 


이런 가정에서 자라서 INTJ가 된 내가 

나와는 다른 가정에서 자란 ENFP남편을 만나 

아무리 봐도 아빠랑 똑 닮은 딸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나는 요새, 어쩌면 내가 생각보다 사람을 더 좋아하고 보기와는 다르게(?) 게으르며 상황과 환경에 잘 적응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어쩌면 나의 엄마도 처음부터 그렇게 차가웠던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는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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