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나는 내 아이를 몰라야 한다

아이를 미지의 상태로 남겨두기 

몇 주에 걸쳐 아이는 박스를 찾았다. 택배가 올 때마다 쪼르르 달려나와 상자를 이쪽저쪽 살펴보고는 '이게 아닌데' 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기를 여러 번. 그러다 얼마 전 새로 산 프린터기 상자를 보고는 


"바로 이거야!" 


라며 기뻐했다. 


그러길래 나는- 기대했다. 얘가 또 뭘 만들려고 이러나. 지난 번 유튜브에서 봤다던 '상자 집에서 하루 살기' 뭐 그런 걸 하려고 그러나. 상자 속에서 하루를 산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닐텐데. 어디까지 얘기를 해줘야 할까. 또 어떻게 말려야 할까. 고민을 하고 있는데 


아이가 주섬주섬 상자를 끌고 나왔다. 더불어 몇 가지 물건까지 챙겨 나오더니 



요러고 있다. 



그러니까 아이는 그 안에 앉아서 휴대폰에 스티커를 붙이려고 박스를 찾았던 것이다. 고작...! 


가끔 아이가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면 나는 그저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한다. 그리고 그냥 내버려 둔다. 내가 너의 머릿 속을 어떻게 다 이해할 수 있겠니. 




얼마 전 입학을 앞둔 학부모 사이에 한 심리검사가 유행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면 향후 학습 방향을 잡아주기 쉽다는 이유로, 다들 한 번씩은 한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난 내 아이에 대해 너무 많이 아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내가 아이와 함께 하고 싶은 건, 서로가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그 여정을 함께 하는 것이다. 대체로 평범하고 때로는 즐거우며 가끔은 싸우기도 하는 시간들을 통해, 우리는 서로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 자체가 우리에게는 모두 추억이다. 엎치락 뒤치락 하며 만들어낸 그 추억으로 우리는 서로를 믿고 신뢰하게 된다. 


그런데 만약, 내 아이에 대한 '검사결과'를 보고서로 받아 본다면? 


물론 때로는 객관적인 관찰이 필요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내 아이니까, 나는 부모이니까 내 아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힘들 수 있으니까. 아이와 갈등이 많거나, 아이가 학교 생활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면 그런 검사나 상담을 통해 도움을 받아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반면 별 문제가 없다면? 나는 그런 검사들이 도리어 아이를 제한하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 




한때 유행했던 MBTI 성격 유형 검사는 나에게 나를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더불어 상대를 이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주었는데, 내가 MBTI를 통해 조금 더 잘 이해하게 된 사람들은 보통 나와 다른 성격 유형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즉, 내가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유형의 사람들이라면, 이 MBTI를 통해서나마 이해를 할 수 있었다는 것. 


그러나 - 

많은 사람들이 느끼듯 이 MBTI는 사람을 이해하는 데에 완벽한 도구는 아니다. 고작 16가지 유형 밖에 없기도 하거니와 각 항목에 따라 '어느 정도'로 그러한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는, 그 결과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다 같은 T 유형이라고 하더라도 그 정도에 따라 분명 다른 성격으로 나타난다는 것. 


그러니 누군가를 진짜로 이해하고 싶다면, 그 누군가와 앞으로도 계속 잘 지내고 싶다면, 함께 시간을 보내는 방법 밖에는 없다. 오래 이야기를 나누고,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나누는 것만이 사람을 알아가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난 결혼한지 11년이 되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내 남편에 대해 몰랐던 점이 하나씩 튀어나온다. 심지어 남편이 익은 달걀 노른자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결혼 8년 차가 되어서야 알았다. (진작 말하지! 나는 좋아하는데!) 


내 속으로 낳은 내 아이도 비슷할 것이다. 매 순간 자라는 아이는, 나에게 매순간 새로울 것이다. 어디서 보고 왔는지 모를 유행어를 따라하고, 친구와 비밀도 만들고, '엄마가 뭘 알아!' 하면서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기도 하겠지. 


그 때도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 엄마가 뭘 알겠니. 사람이 사람을 얼마나 알 수 있겠니. 

그냥 나는 니가 좋아서, 이 문 밖에 오래오래 서 있을 뿐이란다. 


그렇게 아이 곁에 서서 아이의 움직임을 보며, 아이의 말을 들으며, 나는 아이를 탐구한다. 저 멀리 반짝이는 별을 보듯, 깊고 너른 하늘을 보듯, 오래된 나무를 보듯, 나는 아이를 본다. 

때로는 중요한 신호를 놓쳐 먼 훗날 어떤 후회를 하게 될 수도 있겠지. 그래도 나는 여기서 너를 들여다 본다. 가까이서 보고 멀리서도 본다. 너는 가장 궁금한 존재이고, 가장 알고 싶은 사람이다. 



아이를 편하고 반듯한 길 앞에 데려다주는 것보다는, 

어떤 길이든 함께 가겠노라 마음을 먹는 것. 


그것이 미지의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각오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상 가르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