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하루하루를 온전히 살아내는 것
아이는 매일 매 순간 새롭고 신나는 것을 찾아다닌다.
- 엄마, 오늘 지연이한테 놀자고 하면 안 돼?
- 엄마, 오늘 키즈 카페 가고 싶어
- 엄마, 지금 유튜브 봐도 돼?
하지만 어른인 나는 아이에게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날들'에 대해 가르칠 의무가 있다.
- 오늘은 지연이하고 놀 수 없고 키즈카페도 갈 수 없어. 그리고 TV 보는 날도 아니야
- 그럼 뭐해? 나 심심한데
- 네가 스스로 찾아봐.
그럼 아이의 표정은 곧장 시무룩해지고 만다. 지루함. 이건 어른에게나 아이에게나 버티기 힘든 시간이다. 어른이야 알아서 약속을 잡거나 SNS를 켜겠지만 아이에게 허락된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뒹굴거리며 칭얼거리던 아이는 이내 인형들을 모아 유치원 놀이를 하거나 그림을 그린다.
사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도 아이가 마냥 신나 하고 재미있어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솔직히 내가 데리고 있느니, 적당한 키즈카페에 두 시간 정도 맡기는 게 내 몸도 편하다. 하지만 그것도 두어 달에 한 번이지 매번 그렇게 살 수는 없다.
우리의 인생은 어차피 지루한 일의 연속이기 때문에.
그 속에서 몰입의 기쁨을 스스로 찾는 것이 바로 나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알람이 울리면 일어나 물을 한 잔 마신다.
아침을 차려 먹고 세수를 하고 출근 준비를 한다.
사람이 많은 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간다.
내내 컴퓨터를 들여다보며 이런저런 문제를 해결한다.
다시 사람이 많은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온다.
저녁을 먹고 이런저런 집안일을 한다.
씻고 잠자리에 든다.
보통 사람의 하루란 이렇게 흘러간다.
이 가운데에 어떤 날은 친구를 만나고 어떤 날은 영화를 보면서 사는 것이다. 그리고 몇 달 동안 여행을 계획하고 큰 일을 준비하기도 한다.
무채색의 일상을 슴슴하게 살아내는 것.
아무 일 일어나지 않는, 무탈함을 감사하는 것.
그러면서도 일상 속에서 나다움을 찾아가는 것이 지혜일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아침에 일어나서 KBS 클래식 라디오 틀기
아침 루틴을 마친 후에는 커피를 한 잔 마시기
저녁에는 KBS 클래식 [세상의 모든 음악]을 꼭 듣기
종종 좋은 원두를 사서 직접 커피 내려 마시기
등이 있다.
별 거 아닌 일상을 잘 살아내야
인생을 잘 살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 집에는 아이가 그린 그림이 넘쳐나고
아이가 접은 색종이가 곳곳에서 발견되고
침대 위에는 늘 인형들로 복잡하지만
이것이 일상임을 아이가 몸소 깨닫기를 하루하루 소망하는 것
이 또한 나의 일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