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F고 엄마는 T라서
얼마 전 아이가 친구와 싸웠다. 그 친구는 아이와 종종 다투곤 했는데 아무래도 둘이 성격이 비슷한 면이 있어서 부딪히나 보다, 생각하곤 했다. 그래도 최근 들어서는 싸우는 일이 점점 줄어들길래 아이도, 친구도 크고 있나보다 생각하던 차였다.
한참 놀이터에서 뛰어놀던 아이와 친구. 그 중 친구가 먼저 털래털래 어른들이 있는 쪽으로 걸어오다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 친구의 엄마가 친구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친구는 대답은 하지 않고 울기만 했다.
나는 내 아이도 이쪽으로 오려나 싶어 놀이터를 바라봤지만 아이는 올 기미가 없었다. 그 모습에 솔직히 조금은 안심했다. 아마 찔리는 게 있었더라면, 그러니까 친구의 눈물이 아이의 탓이라면 아이는 나에게 와 '아니 그게 아니라~'는 말로 시작되는 핑계 혹은 사정설명을 했을 것이다. 오지 않는다면, 딱히 핑계댈 게 없다는 뜻이다. 즉, 본인 잘못이 아니라는 것.
그래도 일단 친구가 눈물을 보였으니 앞뒤 사정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아이는 억울하다며 이야기를 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장난감을 그 친구가 가지고 놀고 싶다길래 빌려준다고 했어. 대신 얼마나 가지고 놀거냐고 물어봤거든. 그래야 내가 다시 가지고 놀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알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거 물어봤다고 화내면서 자꾸 우는거야."
대충 앞뒤 사정이 이해가 됐다. 평소 그 친구가 어떤 성격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 친구의 마음도 이해가 됐고, 내 아이의 억울함도 이해가 됐다.
이럴 때 꼭 나의 T 성향이 강하게 고개를 쳐든다. 나는 결국 아이에게 '옳은 말'을 하고야 말았다.
"넌 그 친구 성격 잘 알고 있잖아. 그럼 니가 좀 이해를 해주지 그랬어. 그 친구는 장난감을 계속 가지고 놀고 싶은 마음인데 니가 '언제까지 가지고 놀거야'라고 자꾸 물으니까 속상해 진 것 같은데?"
"왜 나만 이해해야 돼?"
아이의 이 말은 100% 맞는 말이다. 왜 나만 이해하고 나만 참아야 하는가. 이 쯤해서 나는 아이의 편을 들어주어야 했다. 그리고 나는 편을 들어주긴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너무 어려운, 그래서 아이에게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편이었다.
"옳고 그름이나 공평함만 가지고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없어. 내가 다 맞다고 하더라도 그게 모두에게 좋은 건 아니야. 가끔은 상대가 억지를 부려도 모른 척 넘어가고 친구가 틀린 걸 맞다고 우기면 '그래 알았어'하고 넘어갈 줄도 알아야 해."
분명 맞는 말이긴 하지만 10살 아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소리였다. 나야 말로 이 때는 '옳은 말'이 아니라 '그냥 넘어가는 이해심'을 가졌어야 했다.
내 아이는 외동이다. 외동에게 사회성을 가르치기란 참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태어날 때부터 집 안에 아이라는 존재는 자기 한 명 뿐. 모든 장난감과 엄마의 시간, 에너지는 본인 차지였다. 굳이 누구와 나눌 필요도 싸울 필요도 욕심낼 필요도 없이 자랐다.
이런 아이가 유치원에 가서 장난감을 두고 친구들과 속상한 일이 생길 때마다 나는 첫 번째로 '공평함'에 대해 가르쳤다.
"네가 10분 가지고 놀았으면 친구도 10분 가지고 노는거야. 네가 이거 하날 가져가면 친구는 다른 하나를 가져가는 거고."
그러나 세상 일이 어디 공평함으로 흘러가던가. 내가 심어준 이 '공평함'은 얼마 가지 않아 무너져버렸고 아이는 더욱 속상하기만 했다.
"내가 10분 가지고 논 다음에 줬는데, 쟤는 10분 지났는데도 나한테 안 주잖아!"
이제 아이는 3년째 학교 생활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이 부분에 있어서는 많이 힘들어 한다. 어른인 내가 보기에는 '까짓거 그냥 줘버려.' 라거나 '그냥 지는 게 이기는거야.'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지만 이런 말들이 혹여 아이에게 '그건 중요하지 않은 문제야'라는 무시로 들릴까봐 그것조차 쉽게 내뱉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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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가 좀 여유로운 마음을 가졌으면 했다. 사람 사이에서는 공평해야 하는 게 맞지만, 상황 상, 또는 여건 상 공평함이 어렵다면 내 아이가 양보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런 마음 밑바닥에는 '네가 그런 것들(장난감이나 과자, 사람들의 칭찬)에 연연하지 않아도, 지금 당장 그것을 손에 넣지 못해도, 넌 결국 멋진 어른으로 성장할거야.'라는 믿음이 있다. 너는 멋질테니, 지금 내 눈에는 이미 멋진 아이이니까, 그런 것들은 좀 양보하면 안될까, 하는 마음인 것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건 너무 어려운 소리다. 사실 나도 이렇게 여유로운 마음을 아직도 갖지 못했다. 어쩌면 나에게 없어서 내 아이에게는 있었으면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것도 조기교육이라면 조기교육인가.
암튼,
아이는 서운해했다. 저녁을 먹는 동안 내내 말이 없길래 내가 '아직 마음이 안 좋아?'라고 물었더니 '엉엉'하고 울음을 터뜨려버렸다.
"내가 잘못한 건 알겠는데, 엄마는 일단 내 편 들어주면 안돼?"
아뿔싸. 아이는 내 바람을, 좀 더 좋은 사람이길 바라는 내 마음을 따가운 지적으로 들은 모양이다. 너는 이미 멋진 아이니까, 라는 나의 밑바닥 마음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다. 말로 안하면 애나 어른이나 모른다. 결국 나는 사과했다.
"미안해. 다음에는 네 편 먼저 들도록 노력할게. 그런데 엄마는 처음부터 네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그리고 아까 한 말도 네가 잘못했다는 뜻은 아니었어."
뒤늦게나마 그 말의 저의를 설명해보지만, 아이의 눈물자국을 지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나는 곧기만 한 내 혀가 아이를 얼마나 아프게 했는지 실감하며 다시 한 번 반성을 한다.
하지만, 자신이 없다. 유독 아이 앞에만 서면 내 마음이 아니라 머리가 돌아간다. 내가 내 마음을 못믿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내 마음을 못 믿는 것은 어쩌면 내가 나를 못 믿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것 봐. 나는 벌써 내가 아이에게 공감할 수 없는 이유를 찾고 있다.
그래도 다음에는 좀 더 노력해봐야겠다. 선 공감 후 바른 말....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