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다시, 급식의 맛

by 바람부는 언덕


10890_9259_3941.jpg 30화 다시, 급식의 맛

인생은 돌고 돌아 다시 급식의 맛이라고 지금 봉구는 생각하고 있다. 커다란 냄비에 배추 된장국이 용암처럼 끓고 있다. 봉구의 배처럼 넉넉한 웍 두 개에는 붉은 제육볶음이 익어가고 있다. 봉구는 이 세 개의 불꽃을 번갈아 보면서 부지런히 겉절이를 무친다. 잠시 후면 밥이 다 되어 김이 빠지기 시작할 것이다. 점심 식사까지 남은 시간은 단 8분. 봉구는 쉴 새 없이 머릿속으로 오늘의 급식을 시뮬레이션 한다.




일의 시작은 얼마 전 재현 아빠의 한 마디였다.


“서린 아버님, 저희 학교 급식 조리사로 와 주실래요?”


봉구는 당연히 그 제안을 마다했다. 자신의 요리 실력은 딱 봉구네 세 식구만큼이었다. 가끔 학규와 현경, 처가 부모님을 모시기는 해도 그것과 학교 급식과는 차원이 다르다. 하지만 재현 아빠는 쉽게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지난번에 봉구가 주었던 돈가스와 이 날 먹었던 비빔밥을 먹어보고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대안 학교라서 학생 수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선생님까지 다 합해도 서른 두 명이에요. 원래는 가까운 도시락 업체에서 배달시켜 먹었는데 아이들 반응이 영 좋질 않아서 조리사 선생님을 한 분 모시려고 했어요. 서린 아버님이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봉구는 지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걱정과는 달리 지연은 매우 호기심 넘치는 표정으로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러다가 봉구보다 먼저 물었다.


“근무 시간은 어떻게 되나요?”

“아이들 점심 준비니까, 대략 10시부터 2시 정도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급여는 150만 원 정도로 책정되어 있는데 혹시 원하시는 바가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제가 학교 측과 최대한 협상해보겠습니다.”


10시부터 2시라면 서린이가 유치원에 가 있을 시간이다. 속으로 딱 괜찮은 일자리라고 생각하는 순간, 봉구는 스스로 흠칫 놀랐다.




다시 일이라니. 첫 직장을 10년 다닌 후 하루아침에 짤렸다. 그런데 다시 일을 한다고? 두려웠다. 그 두려움을 따라가 보니 그때에는 차마 묻지 못했던 질문들이 남아 있었다.


나는 왜 짤렸을까. 회사는 나를 왜 짤랐을까.


물론 봉구만 짤린 것은 아니었다. 회사는 구조조정 중이었고 봉구보다 어린 친구들 중에서도 권고사직을 받은 경우가 꽤 있었으며, 중년을 넘긴 선배들 중에서도 꽤 많은 인원이 감축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이유가 될 수는 없었다. 어쨌든 그 안에 봉구가 들어갔으니까.


“운명이지, 뭐.”


그날 밤 씻고 나온 지연이 로션을 바르며 말했다.


“봉구 씨가 열심히 안 한 것도 아니고, 지각이나 결근을 하는 사람도 아니잖아. 그런데도 일을 그만 두게 된 건, 운명인거야.”


지연은 가끔 저렇게 낭만적인 소리를 한다.


“인생에서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고 하잖아. 너무 겁먹지 말고 정말로 봉구 씨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생각해봐.”


지연의 말은 정답이었다. 다만 지금 봉구가 그 정답 뒤에 숨어도 되는 건지 그걸 알 수 없었다. 봉구는 좀 더 솔직하게 자신의 걱정을 털어 놓았다.


“내가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봉구 씨가? 무슨 문제?”

“혹시 나한테 냄새 나나?”


봉구가 팔을 들어 겨드랑이 냄새를 맡아보았다. 잠옷에서 희미한 섬유유연제 냄새가 났다.


“봉구 씨 냄새 안 나. 아주 가까이에서 맡으면 고소한 냄새가 나긴 해.”


그 말을 하며 지연은 가까이 다가와 안겼다. 그 축복 같은 몸을 안으며 봉구는 깨달았다. 지금 봉구는 불행의 흔적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어른이 되면서 봉구의 삶은 불행보다는 행복과 안정이 더 많아졌지만, 봉구는 종종 불안했다. 어딘가에 불행이 웅크리고 있다가 봉구를 놀래며 입을 크게 벌릴 것만 같았다.




회사에서 짤렸을 때 다행히도 봉구는 별 탈 없이 그 시기를 견뎌낼 수 있었다. 서린이의 변비를 해결하기 위해 채소를 사다 먹이느라 바빴고 그러던 중 지연이 살림을 맡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봉구는 기꺼이(라고는 하지만 딱히 다른 대안이 없었으므로) 그 일을 맡았다.


하지만 다시 일을 시작하고 나서 한 번 더 짤린다면? 봉구의 무능력은 드높이 증명되고 봉구의 자존감은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봉구는 밤새 급식실 조리사가 된 자신의 모습과 그러다가 짤린 자신의 모습, 그리고 이대로 살림을 하는 모습을 번갈아가며 상상했다. 상상의 끝은 늘 파탄이었다. 조리사가 된 봉구는 냄비를 엎고 간을 잘못 맞춰 요리를 망쳤으며 그러다 짤려서 쭈구리가 된 채 집에 쳐 박혔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살림만 하는 봉구가 좋은 결말을 얻는 것은 아니었다. 상상 속에서 살림남 봉구는, 서린이가 사춘기가 되는 순간 집 안에서 찬밥 신세가 되어버렸다.


다음 날 아침 그 이야기를 지연에게 하자, 지연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됐네! 어차피 망할 거면, 하고 싶은 거 하다가 망하자!”

그 말에 봉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만약 내 인생에서 불행의 흔적을 지울 수 없다면 그 흔적을 디폴트 값으로 가지고 가자. 불행아, 너 거기 있냐. 나는 여기 있다. 이런 마음으로 말이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급식실 조리사 일이 하고 싶어졌다. 아니 당장 하고 싶어서 손이 근질 거렸다.


지금에 와서야 하는 말이지만 지난 번 보육원에 가서 보쌈을 삶을 때 봉구는, 사람에게 밥을 해 먹이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인지 피부로 느꼈다. 조잘거리며 뛰어다니던 작은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밥을 먹는 모습은 숭고했다. 사람은 식물과 다르게 햇빛과 물 말고도 필요한 것이 많다. 그 중 가장 필요한 것은 어쩌면 따뜻한 마음이 담긴 밥일 것이다.


그 일을 다시 할 수 있다니. 아니, 일주일에 다섯 번이나 할 수 있다니. 봉구는 신이 났다.




그리하여 봉구는 5월의 어느 날에 ‘꿈벗대안학교’에 급식 조리사로 첫 출근을 했다. 학교는 교회 건물을 빌려 사용하고 있었다. 그 덕에 봉구는 교회의 주방을 마음껏 쓸 수 있었다.


주방에는 전날 주문해 놓은 재료들이 도착해 있었다. 봉구는 곧바로 앞치마를 한 후 커다란 냄비에 물부터 받았다. 육수가 우러나는 동안 배추를 다듬어 잘라 놓고는, 양념을 만들어 고기를 재웠다. 오늘의 메뉴는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한다는 배추된장국에 제육볶음이다. 아무래도 첫 시작은 무난하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정한 메뉴였다.


“오, 이 냄새 뭐임?”

“배고프다! 쌤, 오늘 메뉴 뭐예요?”


열두 시 십분, 종이 울리자 식당에 아이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아이들은 처음 보는 봉구에게도 스스럼없이 쌤이라 부르며 메뉴를 물었다. 봉구는 말없이 주방 앞에 붙여 놓은 종이를 턱으로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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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 제육볶음. 존맛탱 예감.”

“줄임말을 최소화하자, 하준아.”


그때 재현 아빠가 들어오며 아이들의 흥분을 가라앉혔다.


“서린 아버님, 아니, 봉구 쌤, 힘드셨죠? 제가 좀 거들겠습니다.”


그 덕에 늦지 않게 점심 준비가 끝이 났고, 배식이 시작되었다. 선생님들이 각 메뉴를 맡아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어떤 아이들은 겉절이가 싫다며 받지 않았다. 여학생들 중에는 정말로 콩알만큼만 먹는 아이도 있었다.

“이건 진짜 존맛탱.”

“인정.”


아이들의 입으로 밥이 들어간다. 그 모습이 봉구에게는 어떤 명화보다도 아름다웠다. 배추와 된장, 쌀과 고기가 아이들의 몸을 만들어 줄 것이다. 그 몸 안에서 아이들은 생각을 하고 사랑을 하고 배워가고 또 가르치며 살아갈 것이다.


“선생님, 같이 드시죠.”


재현 아빠가 봉구를 불렀다. 봉구도 식판에 음식을 담아 선생님들과 함께 앉았다.


“쌤, 진짜 맛있어요.”

“요리 전공 하셨어요?”

“재현 쌤, 어디서 이런 인재를 구해오셨어요.”


식사를 하던 선생님들이 다들 한 마디씩 칭찬을 해주었다.


“저희 아들 재현이가 참 입맛이 까다롭지 않습니까. 그런 재현이가 봉구 쌤 돈가스를 아주 맛있게 먹었다기에 궁금했었는데 얼마 전에 봉구 씨가 해준 비빔밥을 먹고 제가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 사람, 모셔와야겠다, 하고요.”


그 말이 끝날 때 즈음 이미 아이들은 식사를 마치고 사라진 상태였다. 아마 남학생들은 근처 공원에서 농구를 하고 여학생들은 그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산책하고 있을 거라고 선생님들이 이야기해주었다. 봉구도 그 나이에는 그랬던 것 같았다.


“저기...”


봉구가 말을 꺼내자 다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봉구를 바라보았다.


“내일은 생선을 좀 구워도 될까요?”

“생선이요?”

“네.”


난감해 해는 눈빛이 오갔다.


“아이들이 생선을 별로 안 좋아하더라고요.”


봉구도 이미 각오한 사실이었다.


“그렇죠. 그래서 더 해주고 싶습니다만.”


봉구의 결연한 표정에 선생님들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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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새벽 봉구는 가까운 수산시장에 갔다. 바삐 움직이는 사람과 수레들 사이로 부지런히 생선을 살폈다. 그곳에 있는 생선 중에 봉구가 이름을 아는 생선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앞으로도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실감하며 봉구는 오늘의 반찬으로 고등어를 골랐다. 살이 많고 맛있으면서도 가시가 잘지 않아서 먹기 편한 생선이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아침을 차려 부지런히 서린이와 지연을 먹이고 서린이를 등원 시킨 후 봉구는 곧바로 학교로 향했다. 커다란 생선 박스를 주방에 들이고는 손질을 시작했다. 가게에서 웬만큼 손질은 해주었지만 봉구는 아이들이 좀 더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지느러미를 꼼꼼히 잘라내고 남은 피도 깨끗이 씻었다. 그리고 물이 잘 빠지도록 채반에 담아 두었다.


이어 오늘도 큰 냄비에 물을 담아 육수부터 끓였다. 오늘의 국은 시원한 콩나물국이다. 잘 익은 김치를 쫑쫑 썰어 넣고 마늘도 듬뿍 다져서 넣을 것이다. 밥에는 말린 밤을 넣을 예정이다. 밑반찬으로는 오이를 새콤달콤하게 무치고 두부도 살짝 구웠다.


잠시 후 종이 울리자 오늘도 아이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예상과는 다르게 고등어 냄새를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아직도 기름이 끓고 있는 고등어를 보며 군침을 삼키는 아이들도 있었다.


“고등어 대박 촉촉.”

“결 좀 보소. 이거 소고기임.”


어제와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점심시간이 조금 덜 소란스러웠다는 것이다. 다들 젓가락을 들고서 고등어를 발라 먹느라 집중한 탓이었다. 그건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배달도시락이랑 차원이 다르네요.”

“이렇게 따수운 생선 먹은 게 얼마만인지.”


그런 말들만 잠깐씩 오갈 뿐 식당은 마치 시험장처럼 조용했다.


봉구는 아이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생선을 바르지 못해 고생하는 아이들을 위해 직접 생선을 발라주었다. 사실 고등어는 가시 바르기 아주 쉬운 생선이다. 가운데 큰 뼈를 들어내면 잔가시들도 달려온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봉구에게 발골 장인이라며 엄지를 들어주었다.




한바탕 전쟁같 은 점심시간이 끝나고 봉구는 식판을 씻어 세척기에 차곡차곡 넣었다. 주방 가스레인지부터 조리대, 싱크대를 씻어 닦고, 아이들이 앉았던 테이블도 꼼꼼히 소독제를 뿌려 닦았다. 봉구는 주방 한 쪽에 놓인 간이 의자에 앉았다. 허리가 아파 자기도 모르게 끄응, 소리가 나왔다. 후우, 한숨을 한 번 쉬고 나니 주방이 품고 있던 침묵이 봉구에게로 몰려왔다.


편안했다. 정신없이 고등어를 굽고 국을 끓이고 밥을 퍼 나르는 상황 속에서도 봉구의 마음은 참 편안했다.

봉구의 인생은 급식으로 시작했다. 기억의 근원에 가보면 거기에서도 봉구는 식판을 들고 조리 실장님 앞에 서서 밥을 받고 있었다. 고집스럽고 고통스러운 자아가 생겼을 때에는 학규의 라면이 있었고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을 때에도 대학교 학식이 있었다. 처음으로 돈을 벌었을 때도 회사 구내 식당에 봉구는 서 있었다. 주는 밥만 먹으며 별 생각 없이 살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급식이 끝나 버렸다. 봉구는 직접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해야 했다. 얼마나 많은 양배추를 썰었던가. 그때 물컹해져 버린 시금치는 아직도 봉구의 마음을 쓰라리게 한다. 많이 만들었고 많이 먹었고 또 많이 먹였다. 서린이는 한 뼘 컸고 지연은 더 멋있어졌으며 봉구네 통장은 더 든든해졌다.

그리고 다시 급식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식판을 들고 서 있는 쪽이 아니라 식판에 밥을 담아주는 쪽이다. 주는 것을 생각 없이 먹는 쪽이 아니라, 고민해서 메뉴를 결정하고 직접 준비해야 한다. 반찬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 속에서 호와 불호를 분간하고 한 달에 한 번씩은 생일이 있는 아이들을 위해 미역국을 끓여주고 싶다.

‘디저트도 좀 배워볼까.’


이런 생각을 하며 봉구는 일어났다. 앞치마를 한 채 차에 올라 시동을 켰다. 차를 출발 시키면서 봉구는, 아무래도 다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식품영양학과에 편입을 해야겠다고. 오늘 저녁에 지연 씨에게 얘기해야지. 지연 씨는 당연히 좋다고 하겠지. 그렇게 봉구의 인생이 다시 씩씩하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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