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을 순하게 만드는 방법
술병이 났다.
어제 저녁 첫 모금을 마셨을 때 나는 내가 술병이 날 걸 알았다. 맥주의 첫 맛은 컨디션에 좌우된다. 컨디션이 좋으면 달고 안 좋으면 쓰고 비리다. 어제는 쓰고 비렸다. 여기서 멈출 수 있으면 술이 술이 아니고, 내가 내가 아니다. 술은 술이고 나는 나였으므로 나는 맥주를 차고 넘치게 마셨다. 그리고 술병이 났다.
무엇을 먹든 속이 울렁거렸다. 속이 불편하면 세상이 못마땅해진다. 남편과 딸 아이가 귀찮다. 평소와 똑같은 실없는 말들이 거슬리기 시작한다. 시비가 걸고 싶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하루 종일 자다 깬 고슴도치처럼 가시 돋친 말들을 내뱉었다. 그러다 더는 이러면 안 될 것 같아서 알배추를 샀다.
채소를 먹어야 한다. 마음 같아서는 매콤하고 눅진한 짬뽕을 먹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진짜로 고슴도치가 될 것 같다. 이성이 살아있을 때 채소를 먹자. 이성에게 물을 주듯 채소를 먹자. 날이 추우니 따뜻한 채소가 좋겠다. 맑은 국물에 샤브샤브를 할까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그 끝에 칼국수와 볶음밥이 따라올 것 같아서 메뉴를 바꿨다. 오늘 저녁은 알배추 소고기 찜이다. 밥은 한 톨도 먹지 않겠다. 내 몸과 마음을 순하게 만들어보자.
요리랄 것도 없다. 찜기에 알배추를 성성 썰어 넣고 냉장고에 있는 애호박과 새송이 버섯, 당근도 썰어 넣고 그 위에 샤브샤브용 소고기를 올려서 10분 정도 찌면 된다. 뭔가 좀 아쉬워서 초간장을 만들어 찍어 먹었다. 배부르게 먹었는데도 기분이 좋다. 그렇게 첫 날, 몸에 좋은 음식으로 하루를 마무리 했다. 나는 순해지고 있다, 순해지고 있다.
다음 날 저녁, 남편이 알배추를 꺼냈다.
“오늘은 내가 해봐도 돼?”
그래, 그럼 오늘은 당신이 해봐. 나야 좋지 뭐.
남편은 알배추를 몇 장 뜯어 자르고 애호박을 크게 썰었다. 당근은 두툼하게 잘랐다. (나는 야채 두꺼운 거 싫어하는데 당신은 그게 좋은가봐?) 그 위로 대파 한 뿌리를 모두 썰어서 그 위에 얹고 불을 켰다.
“소고기는 나중에 넣어?”
“응.”
나중에 올린 소고기 중 몇 개는 익지 않았다. 나는 두꺼운 애호박과 당근을 억지로 씹어 삼켰다. 고기가 익지 않았다는 둥, 당근이 두껍다는 둥 그런 말은 하지 않는다. 남이 해준 밥에 토다는 거 아니다. 그랬다가는 다시는 요리를 하지 않겠다고 할 수도 있다. 말없이 채소와 고기를 모두 비웠다.
약간의 변형을 꾀한다면 같은 요리를 삼일 째 먹을 수 있다. 낮에 마트에 갔다가 훈제오리를 발견했다. 내 시선을 따라오던 남편이 내 마음을 대변했다.
“쪄먹자.”
그래. 찌면 첨가물들도 좀 빠지지 않겠어? 이름 모를 화학 조미료들이 수월하게 빠지라고 오리고기를 제일 먼저 찜기 바닥에 깔았다. 배추와 파, 당근과 애호박을 (내가) 얇게 썰었다. 채소를 오리고기 위에 덮은 뒤 불을 켰다. 오 분 후에 소고기를 추가했다. 역시 몇몇 소고기는 익지 않았다. 허니머스타드를 곁들여 먹었다. 전혀 다른 요리가 되었다.
그렇게 삼일 내내 채소찜을 먹었다.
나는 순해졌을까. 그건 잘 모르겠지만 속은 편해졌다. 저녁 메뉴 고민이 사라지니 오후 5시 40분까지 꽉 채워서 놀 수 있다. 냉장고 속 채소칸이 성실하게 비워지는 광경도 마음에 든다.
누군가 그랬다. 하기 전에 좋은 거 말고, 하고 나서 좋은 일을 해야 한다고. 운동이 그렇고, 좋은 음식을 챙겨 먹는 일이 그렇다. 귀찮고 힘들지만 하고 나면 좋다. 다시 상기해보자면 그날 저녁 나는 사실 짬뽕이 먹고 싶었다. 그럼에도 채소찜을 선택한 나를 며칠은 더 칭찬해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