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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를 따라하다가 대상포진에 걸린 썰

하루키 비용 32310원

by 바람부는 언덕

며칠 하루키를 따라한답시고 새벽 기상을 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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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니 시작은 2월 7일이었던 것 같고, 2월 27일까지 모두 12번의 새벽기상을 했다. 일어나면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 글을 썼다. 글을 쓰다보니 배가 고파서 캐슈넛을 먹기도 했네.


그리고 나름 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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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갓생 살기를 열심히 하던 중,

내 뱃가죽이 조금 이상해졌다.




나는 종종 내 배를 만진다.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때 주로 만진다. 뱃살을 만지면서 지나치게 살이 찌지는 않았는지 느껴보기도 하고, 오늘 저녁 뭘 먹어야 할지 결정하기도 한다. 배가 좀 나온 것 같으면 가볍게 먹고, 조금 날씬하게 느껴지면 방심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내 뱃가죽 느낌이 이상했다. 만져도 만진 것 같지 않다고 해야 하나? 감각이 무뎌진 것 같았다. 그냥 피곤해서 그러려니 싶었는데,


하루 이틀 지나고 난 후부터는 가렵기까지 하다.


그래서 그냥 긁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랬더니,


발진이 올라왔다. 빨갛게.


그래서 집에 있는 약을 발랐다. 하티손이라고, 약한 스테로이드 계열 연고가 집에 있어서 그걸 발랐다. 나아지지 않았다. 다음 날에는 남편이 다른 연고를 발라줬다. 그래도 낫질 않았다. 혹시 싶었다.


이거 대상 포진 아니야?


생각은 했지만, 설마, 싶었다. 대상포진에 걸릴 이유가 전혀 없었으니까. 나는 피곤하지 않았다. 잘 자고 잘 먹고 있었으며 딱히 스트레스 받는 일도 없었다. 그런데 왜 내가 대상포진이겠는가....!!


그래서 하루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럼에도 차도가 없어서 다음 날 아침 일찍 피부과에 갔다.


대상포진이네요. 뭐 피곤한 일 있으셨어요?

아니요.


약을 처방 받고, 약국에 들러 약을 받고, 집에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나 뭐 피곤했나. 딱히 생각나는 건 없었지만 굳이 굳이 찾아보았더니 '하루키 따라하기'가 탈이 난 게 아닌가 싶다.


https://brunch.co.kr/@sohyang0311/91


문제는, 하기로 했으면 제대로 해야 하는데, 너무 들쑥날쑥 했다는 것. 어느 날은 일찍 일어나고, 어느 날은 6시가 다 되어 일어나기도 했다. 자는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은 9시에 눕고 어느 날은 11시까지 깨어 있었다. 이런 불규칙성이 무리가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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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대상포진 약이 비쌌다. 진료비까지 합쳐서 3만 2310원. 이것을 나는 하루키 비용이라고 부르겠다.




분명 하루키는 갓생러 of 갓생러다. 보통 사람이 따라하기 힘든 생활 패턴을 가지고 있다. 전업 작가가 아니라면 그의 일상은 넘사벽이다. 그건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내 나름대로 나에게 맞춘 패턴으로 시작을 해보려고 했던 건데.


그럼 이제 나는 대체 언제 글을 써야 하나. 그런 생각을 요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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