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외톨이가 됐다

by 바람부는 언덕

그렇게 조심을 했건만,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기도를 하고 굿을 하고 액땜을 해도 막을 수가 없다.


나는 아이가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행복하길 바랐다. 좋은 대학이나 좋은 직장보다 그게 더 좋은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에게 국영수 보다도 배려와 양보를 먼저 가르쳤다. 친구의 말을 잘 들어줄 것, 먼저 양보하고 배려할 것, 욕심 부리기 보다는 함께 하는 시간을 감사할 것 등등.


아이가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도 나름 노력은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우리 몰래 다가와 우리의 뒤통수를 아주 세게 후려 갈겼다.


"엄마, 나 친구랑 절교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눈 앞이 캄캄했다. 애써도 안 되는 일이 있기야 하겠지만, 이렇게나 빨리 찾아오다니. 입에서 온갖 험한 말이 음소거 형태로 나왔다.




나는 친구가 별로 없다. 이사와 전학을 자주 다닌 것도 한 몫 하겠지만, 그보다는 내 성격이 문제였다. 문제, 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다. 암튼 성격 탓에 나는 친구가 별로 없다.


지금은 혼자 있는 시간을 오히려 좋아하고 든든한 가족이 있으니까 상관 없지만, 나도 사춘기 때는 친구 문제로 고민을 참 많이 했었다. 괴로웠고 속이 아팠다. 대학에 들어가고 사회 생활을 하는 내내 늘 사람들 눈치를 보느라 에너지의 상당수를 할애해야 했다.


내 아이는 안 그러길 바랐다. 그래서 참 애를 썼는데.


아이가 외톨이가 되고 보니 별별 생각이 다든다. 내가 살면서 잘못을 너무 많이 해서 이런 걸로 벌을 받나 싶기도 하고, 이런 성격을 가진 내가 아이를 낳은 게 애초에 잘못한 건가 싶기도 하다. 우리 아이가 다른 엄마에게서, 그러니까 성격 시원시원하고 쿨한 엄마에게서 태어났으면 훨씬 행복했을까.


아이에게 친구랑 절교를 했어도 씩씩하게 학교에 가라고 말했다. 절교한 친구가 원하는 것은 네가 속상해 하는 모습일테니, 절대로 그 모습을 보이지 말고 다른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으라고도 말해주었다.


하지만 일이 그렇게 간단하면 세상에 문제가 어디 있겠는가. 이미 5월이라 아이들 사이에서는 단짝이 다 정해져있었고, 아이가 들어갈 틈은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아이는 체험학습을 가는 버스에서도 혼자 앉게 되었다.


나는 그 말에 참 속상했다. 여자 아이들이 홀수니까, 누군가는 혼자 앉아야 하고, 그것이 그저 내 아이인 것 뿐인데도 너무 속상해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것도 아니고, 제비 뽑기를 한 것도 아니다. 단짝으로 지내던 친구가, 다른 친구와 더 친해지면서 내 아이가 외톨이가 된 것이다. 마음이 쓰리다.


그래서 새벽부터 일어나 김밥을 쌌다. 아이가 좋아하는 꼬마 김밥을 오종종하게 말았다. 그런데 막상 썰어보니까 자꾸 터진다. 내 속처럼 터진다. 그 중 멀쩡한 것만 몇 개 골라서 도시락에 넣어주었다. 먹고 싶다던 과일도 잘라서 따로 담아주었다.


혼자 앉아서 먼 길을 가야 할테니 휴대폰 이어폰도 챙겨 주었다. 좋아하는 노래 실컷 들으면서 가면 마음도 좀 나아지겠지. 그렇게 아이를 배웅하고 집에 들어왔는데.


"엄마, 휴대폰이 왜 충전이 안됐지? 배터리가 20% 밖에 없어. ㅠㅠ"


나쁜 일은 몰아서 온다더니. 저 놈의 충전기가 또 말썽인가보다. 그런 거 하나 살펴봐주지 않은 남편에게 괜히 화가 난다. 그 긴긴 길을, 노래도 없이 어떻게 버틴단 말인가. 나는 막막해져서 울고 말았다.



다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누구나 겪는 흔한 일이다. 초등학교 때 친구는 커서 아무도 안 만난다.


이런 말들, 나도 안다.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 다 짝꿍이 있는데 나만 없는 그 상황에서의 막막함. 그 기억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친구의 마음이 어떤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르던 기억도 평생 남는다. 아마도 내 아이는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성장하겠지만, 그 어딘가에 이 일은 깊은 상처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 상처는 때때로 아이의 발목을 잡고 자신감을 깎아 먹고 주저 앉힐 것이다. 나에게 그랬듯이.



욕이 나온다. 인생이라는 잡것에 자꾸 욕이 나온다. 뭐 하나 쉽게 넘어가는 일 없이 빅엿을 날리는 인생에 나는 소리 없이 빅욕을 날린다.

매거진의 이전글돌아오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