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상처 끝에는 늘 애정이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을 미워했고, 동시에 누구보다 사랑했다. 미움과 사랑이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채 나란히 흐르던 시절, 나는 둘째 이모 곁에서 자랐다.
바쁜 부모님을 떠나 제주에 살게 되었을 때, 이모와 할머니, 그리고 먼저 보내졌던 남동생이 있었다. 부모님이 감당하기엔 어려서 손이 더 많이 갔을 테니까. 이모는 남동생을 아들처럼 품에 안고 살았다. 나는 뒤늦게 그 집에 들어섰고, 이미 오랜 정이 쌓인 자리에서 방향을 잃은 사람처럼 서 있었다. 엄마가 그리워 울음을 삼키던 밤이면 이모는 더 멀게만 느껴졌다. 아빠를 닮은 내 얼굴을 볼 때마다, 아빠에 대한 미움을 나에게 쏟아내던 이모의 말이 마음을 후벼 팠다. 그럴수록 나는 작아졌고, 외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모는 내 곁에 있었다. 친구와 싸웠다고 울며 전화를 걸던 날, 빗자루를 든 채 학교로 달려온 사람도 이모였다. 복도 끝에서 그 모습을 본 순간, 얼굴이 화끈거릴 만큼 부끄러웠지만 이상하게도 가슴이 뭉클했다. 그렇게 무섭던 사람이 나를 지키려는 눈빛으로 서 있었다. 열이 펄펄 끓어 몸이 무너질 듯하던 날엔, 그 마른 몸으로 나를 업고 병원까지 달려갔다. 등 뒤로 전해지던 거친 숨소리와 뼈마디의 감각이 아직도 생생하다. 무섭고 싫었던 사람인데 누구보다 나를 지켜주는 사람이기도 했다.
사춘기를 지나 다시 엄마 곁으로 돌아가 살게 되었을 때도 이모는 함께였다. 사실 이모는 굳이 오지 않아도 됐지만 우리 곁에 있고 싶어 했다. 나와 동생을 두고 혼자 남기 싫었던 거겠지. 어린 마음엔 여전히 그 눈빛이 두려워 엄마 뒤에 숨곤 했다. 그런 나를 보며 이모는 얼마나 서운했을까. 그때는 그 서운함이 상처였을 거라는 걸 몰랐다. 결혼하기 전까지도 우리는 늘 함께였다. 그게 답답하고 불편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건 이모의 외로움이 나를 붙잡은 모양이었다.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된 건 한참이 지나서였다.
시간이 지나며 이모 생각이 더 자주 났다. 남편이 이모에게 서운하게 굴면 어쩌나, 그 따뜻한 마음을 알아봐 주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따라붙었다. 그만큼 내 안에서 이모는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다행히 남편은 그런 내 마음을 이해하듯, 이모를 나의 또 다른 엄마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나는 꾸미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옷차림을 고르고 머리를 만지는 그런 사소한 일들이 내겐 즐거움이었다. 반면 이모는 언제나 같은 옷차림이었다. 화장기 하나 없이, 손끝에 남은 일의 흔적만 묻은 얼굴로. 우리만 바라보느라 자기 자신을 돌볼 겨를이 없던 사람. 그 무심한 얼굴엔 세월의 바람이 그대로 쌓여 있었고, 그게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분홍빛 립스틱 하나를 사서 이모에게 건넸다. 이모는 “뭘 이런 걸 사 왔냐”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돈이 아깝다고, 이런 건 쓸데없다고 했다. 나는 TV를 보고 있었고, 이모는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문틈 사이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슬며시 고개를 돌리자 거울 앞에 선 이모가 보였다. 내가 건넨 립스틱을 조심스레 입술에 바르고 있었다. 입술 끝이 분홍빛으로 물들자 이모는 아주 잠시 웃었다.
사춘기의 기억을 꺼내보면, 그 시절의 거의 모든 장면엔 이모가 있다. 무섭고 차갑게 느껴졌던 순간들마저도 결국엔 사랑의 다른 얼굴이었다. 모진 말 뒤에는 늘 다 말하지 못한 애정이 숨어 있었고, 그걸 알아차리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도 이모를 떠올릴 때면, 어린 딸처럼 마음이 서럽게 흔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