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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Mar 08. 2018

박아나의 일상뉴스

변하고 변하지 않는 것

 10일간의 나의 뉴욕 여행은 끝났다. 비행기 안, 피로감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잠을 좀 자야 될 것 같다. 그런데 생각보다 잠이 확 오지는 않는다. 글을 쓰면 잠이 오려나? 그러다 설마 다 써버리는 건 아니겠지... 하긴 14시간은 긴 시간이다. 글도 쓰고 잠도 잘 수 있겠지. 아니면 영화를 몇 편 보는 것도 좋겠다.  


 이번 여행 내내 시차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어제도 무려 새벽 3시가 다 돼서야 잠이 들었다. 보통 밤 11시 전에는 잠이 드는 평상시와 비교하면 엄청나게 늦게 자는 셈이었다. 결국 늦잠을 자다가 아침 식사를 거의 못했다. 그래서 집에 돌아가면 무리 없이 시차 적응이 될 것 같다. 애초에 시차 적응을 제대로 못했으니까. 확실히 겨울에 미국에 오면 시차 적응이 더 어렵다. 나이 탓이 아니라, 계절 탓인 걸로 하자.  


 맨해튼에서 단골이었던 작은 일본 식당에 찾아갔다. '이치마사'라는 이름의 음식점인데, 왠지 발음을 조금 뭉개면, '잊지 마삼'같이 들리지 않나? 그래서 잊지 않고 있다. 역시 이름을 잘 지어야 한다. 몇 년 만에 방문이어서 혹시 주인 아주머니와 셰프 아저씨가 바뀌었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때 그 얼굴 들이었다. 식당에 들어서자 내가 이곳에 살았을 때로 시간이 돌아가는 것 같다. 인테리어도 그때 그대로고, 벽에 붙어있는 사진들도 똑같다. 그런데 의자에 앉아보고 알았다. 쿠션이 푹 꺼지는 게 예전보다 많이 낡았다는 것을. 그리고 그 의자처럼 주인인 마사 아주머니의 얼굴에도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마사 아주머니는 나를 보자 몹시 반가워했다.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뜨끈해진다. 

반가웠어요! 진짜!

 아주머니는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회사에 잘 다니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잘 지내고 있는데, 회사는 그만두었어요.” 그러게... 여기를 떠나고 내 인생은 많이 바뀌었다. 평소에는 잘 못 느끼다 누군가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이 물어보면 그때 실감하게 된다. 많은 게 달라졌구나... 그리고 지금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 하나 더 깨닫는다. 내 변화의 시작은 여기를 떠나고부터가 아니라, 여기서부터라는 걸. 뉴욕이 시작이었다는 걸.  


 이 식당에서도 처음 접하게 된 게 있다. 오키나와 출신인 마사 아주머니 덕분에 오리온 맥주를 처음 먹었고, 오리온 맥주가 오키나와 산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날도 추억의 맥주를 먹고 싶었지만, 너무 피곤해서 만약에 한 모금이라도 마시면 대화가 불가능할 것 같아 마음을 접었다. 음식을 주문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한참 손님이 몰릴 시간에 손님이 나밖에 없었다. 요즘 장사가 잘 되는지 걱정스럽게 물어보았다.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경기가 안 좋았고 지금까지도 그 영향을 받고 있는데, 올해 말에나 경기가 혹시 좋아질까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바꾸상이 있었을 때는 참 좋았는데...” 그녀의 표정이 어둡다.

 

 맨해튼은 그동안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월세 아끼려고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아침에 차도 덜 막힌다, 새로운 음식점들이 많이 들어서면서 사람들로 북적댔던 바로 옆, 헬스 키친도 썰렁해졌다, 관광객들도 많이 줄어서 로어 맨해튼도 문 닫는 집들이 많다, 그런데도 높은 건물들은 계속 올라오고 있다. 지금의 상황들을 나에게 전한다. 그렇지 않아도 하이라인 걷다가 엄청나게 규모가 큰 공사들이 많아서 놀랐다고 했다. 맨해튼뿐만 아니라 자기가 사는 퀸즈도 그런 공사들이 많다며 높은 건물들이 많이 생기니까 예전 모습을 잃어가는 것 같다며 아쉽단다.  

하늘을 찌를 기세로 공사중인 하이라인 구간 공사.

 나도 사실 같은 생각을 했다. 자꾸 이렇게 높은 빌딩들만 빽빽하게 들어서면 어떻게 될까? 물론 맨해튼을 밖에서 바라볼 때는 엄청 근사해 보이겠지만, 맨해튼 안에 있으면 햇빛도 안 들어 어둡고, 하늘 보기도 어려워 답답할 것 같다. 벽이 높은 감옥에 갇혀있는 느낌이랄까? 물론 고층 빌딩들이 만들어내는 스카이라인의 매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우리가 놓치는 것들도 있다.  


 고풍스러운 옛 건물과 같은 나이의, 어쩌면 더 오래된 나무, 아이들의 놀이터, 동네의 작은 공원, 그리고 로컬들이 즐겨 찾는 작은 커피숍과 샌드위치 가게도 있다. 특히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가게들은 이런 변화에 가장 취약하다.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이나 인터내셔널 패스트 패션 브랜드만 세련된 새 고층 건물의 월세를 지불할 능력이 되니까 말이다. 개발이 이어지면서 작은 가게들은 점점 설 곳이 없어지고 있다. 그들이 경쟁하기에 현실의 벽은 너무 높다. 고층 건물의 실제 높이만큼이나. 중국 등의 외국 자본이 들어와서 이런 대규모 개발들을 많이 하고 있다. 그들에게 예전에 대한 향수는 중요하지 않다. 완전히 새로운 것, 엄청나게 높은 것을 원할 뿐이다. 돈이 많은 걸 바꾼다. 우리도 이미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다음에 오면 헌 것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겠지. 언젠가는 그곳에 무엇이 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겠지.  

부르클린 브릿지,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내가 즐겨 가던 링컨 센터의 에이브리 피셔홀도 데이비드 게펜홀로 이름이 바뀌고 거기에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은 것은 있었다. 지하철에서 인터넷이 되는 것을 보고, 뉴욕 지하철도 이제 많이 좋아졌구나 싶었는데... 역시 주말이면 공사가 많아 스케줄을 확인하지 않고 타면 낭패를 보게 되는 건 여전했다. 거기다가 쥐까지 다 몰아내지는 못했나 보다. 14 번가 역에서 F트레인을 기다리다가 철로에서 질주하는 쥐를 보고야 말았다. 그래도 플랫폼에 올라오지 않는 게 어디냐. 그리고 도시의 상징인 비둘기들. 서울보다 훨씬 많다. 예전보다 더 통통해진 건 기분 탓인가? 날지 않고 걸어 다녀서 그런가 보다. 아니면 통통해져서 날지 못하는 것일 수도... 인도를 비둘기들과 같이 걷는 기분, 나쁘지 않네. 나한테만 다가오지 않는다면. 

여전히 화려한 타임스퀘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센트럴 파크에서 달리는 사람들, 내가 좋아했던 뉴욕 1 채널의 앵커, 공원에서 체스를 두는 사람들, 길거리에서 파는 핫도그들과 할랄 음식의 냄새, 빨간불에도 차만 안 오면 횡단보도를 거침없이 건너는 사람들, 타임스퀘어의 화려한 전광판들과 정신없이 사진 찍는 관광객들, 큰 봉투로 묶어놓은 길거리의 쓰레기 더미들, 그리고 요란한 사이렌 소리.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도 있지만 어쩌랴. 이게 뉴욕의 일부분인데.  


 변화가 좋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한 어정쩡한 나이. 어쩌다 보니 그런 나이가 되었다. 새 것이 좋기도 하지만, 옛것을 지키고 싶다. 정확히 말하면 변화의 속도를 잘 쫓아가지 못하는 것 같아 그게 불안하다. 내년, 내후년이 되면 어떨지 모르겠다. 더 힘들어지겠지. 아니면 뒤쳐지는 나에 더 익숙해져서 오히려 불안을 덜 느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또 어떠랴. 변화하지 못하는 나도, 변화를 두려워하는 나도, 변화를 받아들이려고 애쓰는 나도, 다 나인데. 뉴욕이 뉴욕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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