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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Mar 01. 2018

박아나의 일상뉴스

호크니와 고흐

 뉴욕... 왜 내가 올까 말까 고민했을까? 비행기가 착륙하고 완전히 정지할 때까지 흐르는 'New York, New York'을 듣는 순간 알았다. I want to be a part of it, New York, New York... It‘s up to you, New York, New York.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그래, 뉴욕이야! 


 뉴욕은 도도해. 사랑 따윈 구걸하지 않아. 왜냐고? 사랑받는데만 익숙하거든. 그냥 다들 널 사랑하지. 그래서 난 뉴욕이 편해. 일방적으로 사랑만 해주면 되니까. 나를 바라봐줄까 말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뉴욕은 그런 거 안 하니까 기대도 마. 내가 속한 곳에서는 난 사랑받기 위해 애써야 했어. 아나운서로서 당연히 대중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했지. 회사 그만두고 난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아.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릴 때도, 여기 브런치에 글을 올릴 때도 사랑과 관심은 필수지. 그러려면 가만히 있으면 안 돼. 뭔가 애써야 돼. 그래서 뉴욕이 좋아. 그냥 좋아하면 되니까. 사랑받으려고, 잘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니까.   


 내가 뉴욕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쓰고 보니 짝사랑이 심하네. 누군가를 향한 짝사랑은 상처를 남기지만, 뉴욕을 향한 짝사랑은 추억을 남겼으니, 나에게도 밑지는 장사는 아닌 듯. 물론 뉴욕 하고 거래를 하자는 건 아니고, 옛 추억을 소환하는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거기다가 이번 여행은 데이비드 호크니를 만날 수 있다! 최근에 열린 그의 전시회 중에서는 규모가 제일 크다고 하니, 이번 전시회를 놓치면 후회하겠지.  

예전에 봤던 호크니의 강렬한 그림

 내가 처음 호크니를 알게 된 건 첼시에 있는 어느 갤러리를 우연히 들어가면서부터다. 그의 그림은 강렬하고 컸다. 영국 요크셔 지방의 풍경을 표현한 알록달록한 색채에, 한 폭의 그림을 여러 캔버스에 담아낸 엄청난 스케일에 압도되었다. 그의 그림은 화려하면서도 심플했다. 차가우면서도 따뜻했다. 외로우면서도 다정했다. 그의 작품 중 아주 일부, 그것도 요크셔 지방의 풍경들을 그린 작품들 위주로만 본 것이서 다른 작품들을 기다려왔다. 그리고 드디어... 책에서만 보던 그의 다른 작품들을 만나게 된다. 

 

이번 전시회, 입구부터 심상치 않았다.

 

 

  호크니의 전시회는 그림도 많았고 사람도 많았다. 하나하나 시간을 두고 감상하기에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큰 키가 여러모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지인 두 명을 같이 그린 초상화 시리즈들도 참 좋았는데,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그 둘 간의 관계가 어떤지 그림만 봐도 느낌이 왔다. 아니나 다를까, 호크니도 이런 미묘한 감정들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 오랜 시간을 관찰에 공을 들인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 포착한 특징을 그림에 담아내면, 그게 바로 작품이 되고 예술이 된다.  


 

 


 

 내 친구 화가 동생을 만날 때마다 내가 놀라는 점이 있다. 그녀는 나도 잘 기억 못 하는 나를 너무 잘 기억하고 있어서다. 내가 예전에 했던 말, 나의 반응들, 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까지 다 기억하고 있다. 넌 어쩜 그렇게 기억력이 좋냐고 물으니 “언니, 그건 기억력이라기 보다는요, 전 늘 사람들을 관찰하는 습관이 있어요. 그림을 잘 그리려면 관찰을 많이 해야 해요. 그 사람이 어떻게 눈을 깜박이는지, 어떻게 걷는지 계속 관찰하죠. 그걸 자꾸 반복하다 보면 그런 것들이 다 기억에 남아서 그런 거예요.” 그렇다. 예술의 시작은 관찰이다. 전시회에 그림을 감상하러 온 것도 일종의 관찰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나의 예술 작업은 이미 시작된 셈이군. 

관찰력 발동!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떤지 느낌이 오시나요?

 호크니는 피카소가 그랬던 것처럼 일찍이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많이 받았고, 받고 있다. 생존 작가 중 가장 작품 가격이 비싼 작가 중 하나기도 한 그를 보니, 비행기 안에서 본 영화 ‘러빙 빈센트’의 고흐와 참 대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흐는 호크니와 달리, 살아 있을 때 인정받지 못했다. 가난과 외로움 속에 고흐는 그리고 또 그리며 그림에만 몰두했지만, 세상은 그에게 철저히 무관심했다. 지금 그가 MOMA에서 가장 관람객들이 많이 모여있는 그림이 자기 그림이라는 걸 알면 어떤 생각이 들까? “진작에 이렇게 좀 좋아해 주지!” 이럴까?  

starry night을 보고 있는 관람객들, 늘 인기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별이 되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면, 고흐는 자신의 꿈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자신이 영원히 빛나는 별이 되었다는 것을. 짧은 생을 마감한 그의 삶이 너무 아쉽지만, 죽음 이후의 삶은 이토록 영원하다니 놀라운 일이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이 이래서 나오는 말인가 보다.  


 


 뉴욕에서의 시간은 짧고 그 추억은 길다. 뉴욕을 걷고, 뉴욕을 관찰하고, 뉴욕을 느끼며,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여기서 쓰는 글을 통해 내 기억은 더 오래 남겠지. 그러니, 더 잘 써야겠다. 내 기억은 소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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