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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Mar 09. 2018

박아나의 일상뉴스

교토의 이정표

 하루 종일 오르내리는 이름이 있다. 낯설지 않은 이름인데, 낯설다.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책이면 나를 낯선데, 낯설지 않은 곳으로 데려다 줄까?  


 누군가는 그곳에서 하루 일곱 끼를 먹다 체해서 손을 따기도 하고, 누군가는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싶을 때마다 찾는 곳이라 했다. '교토에 다녀왔습니다'의 임경선 작가는 도쿄는 감각의 도시, 교토는 정서의 도시라 하였다. 감각의 도시 도쿄와 정서의 도시 교토. 도시를 좋아하는 나는 늘 도쿄를 선택했고, 교토는 늘 밀려났었다. 작가의 말처럼 도쿄가 감각의 도시라면, 나는 감각적인 것들에 더 끌리나 보다. 그런가? 움찔한다.  


 감각의 도시는 속도가 빠르다. 감각의 도시는 기다림이 없다. 감각의 도시에 사는 나는 무엇을 하든 지체할 시간이 별로 없다. 가치판단도, 그에 따른 선택도 빠르다. 감각의 도시답게, 빠른 선택을 위해서는 감각이 동원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왜 이런 선택을 하였는지 본질적인 이유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일이 생길지 앞으로를 내다보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만 넘기면 될 일이다. 물론 모든 선택에 시간을 쏟아부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때론 잠깐 멈추어 서서 그 안을 들여다볼 시간이 필요한 결정들도 많다. 그렇지만 들여다볼 시간이 우리에겐 없다. 있다 해도 그런 시간에 익숙지 않다. 만약 너무 달리고 달려 숨이 점점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면, 그때가 바로 잠깐 멈추어 서야 할 순간이다. 우린 그것들을 그냥 무시하고 있지만 말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많은 것을 내려두면서 늦게나마 나는 깨달았다. 나는 몹시 아찔한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 아슬아슬한 감각의 다리를 건널 때 후들거리고 있었다는 것을 그 다리에서 내려와 보니 알 수 있었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곳에서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흔들려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나는 괜찮지 않았다.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팠다. 인정하자. 나는 감각의 도시에서 잠시 떠날 필요가 있다. 


 ‘교토에 다녀왔습니다’란 책은 헌책처럼 빛바랜 느낌이다. 시골 책방에 오랫동안 꽂혀있었던 책 같다고나 할까? 책을 손으로 만져보면 그런 느낌이 더 살아나는데, 갱지 같은 소재로 촉감도 부드럽지는 않다. 그러나 많은 책들 사이에서 이 책이 유독 돋보였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진달까. ‘교토에 다녀왔습니다’라는 제목도 자극적인 것이 아니어서 더 끌렸다. 공손하게 나에게 말을 건네는 것 같다. 조심스럽게 책을 읽기 시작했다. 살아가면서 생각의 중심을 놓칠 때, 마음을 비워낼 필요가 있을 때 왠지 교토가 무척 그리워질 것 같다는 임경선 작가의 말에 밑줄을 그었다. 그녀가 말하는 정서의 도시, 교토는 어떤 곳일까? 교토라면, 정서의 도시 교토라면, 나의 헛헛함을 채워줄 수 있을까? 교토에 가보자. 이번에는 도쿄가 아닌 교토에 가보자. 늦가을의 끝, 나는 교토에 다녀왔다.  

교토 여행을 생각중이시라면...

 교토와 도쿄. 뭔가 발음할 때마다 헷갈리는 곳, 교토역에 도착했다. 교토역에서 나오자마자 앞쪽을 바라보니 건너편에 교토타워가 있다. 도시 전체가 높은 건물 없이 나지막한 분위기라서 그런지, 다른 주변 건물들과 어울리지 않은 어색한 존재감이다. 과거의 전통이 많이 남아있는 교토는 타워보다는 탑이 어울릴 것 같다. 우리나라의 경주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나는 교토타워에 올라가 보고 싶지 않았다.  

교토역에서 나오자마자 보이는 교토타워

 청수사에는 일본 곳곳에서 찾아온 수학여행 온 학생들, 다른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까지 합세하여 사람이 참 많았다. 호젓한 분위기에 둘러보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북적대는 사람들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이 압도적이었다. 건물과 자연이 마치 한 몸인 것처럼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거기다 빨갛고 노란 단풍잎들까지 더해져 제대로 눈호강을 할 수 있었다. 여행 전에 가장 기대하고 간 곳은 철학자의 길이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작은 개천을 따라 이어지는 이 아름다운 길은 이름에 걸맞게 끝없는 생각의 길로 나를 안내했고, 그 길의 끝무렵에 이르렀을 때는 철학자가 된 기분이었다. 벚꽃 피는 봄에 오면 어떨까? 늦가을과는 다른 느낌으로 환상적일 것 같다. 봄에... 다시 오고 싶다.

늦가을에 걷는 철학자의 길

 교토역 근처에 위치한 숙소로 돌아오는 길, 저 멀리 반짝이는 교토타워가 보인다. 도시 전체가 대부분 낮은 건물들이어서 교토타워는 그 어느 각도에서도 눈에 확 들어온다. 교토 타워 건너편에 교토역이 있으니까 타워만 보고 가면 되겠다. 사막을 헤매는 여행자가 별을 보고 방향을 잡는 것처럼, 교토타워는 나의 숙소로 가는 이정표가 된 것이다. 지도를 보지 않아도, 거리 이름을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교토타워를 향해 가면 된다. 아무런 걱정 없이, 오늘 하루 여행에서의 즐거움을 되새기며 말이다. 처음에 교토타워가 이 고즈넉한 동네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묘하게 필요한 존재였다. 교토타워는 나를 안심시켰다. 어두운 밤거리, 낯선 교토에서 헤매지 않을 자신감을 주었다. 확고한 신념처럼 말이다. 그런 신념을 바라보고 가는 길은 외롭지 않다. 내게 그런 신념은 무엇일까?

어디서든 교토타워는 보인다.

 큰 도시에는 그 도시를 상징하는 타워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타워의 전망대는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도시의 전망을 즐기기 위한 목적으로 쓰인다. 그러나 내게 교토타워는 올라가서 전망을 즐기기 위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 자체로 빛나는 교토의 이정표, 그리고 삶의 이정표 같은 존재다.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가까워지기 위해 바라보는 존재다. 그것은 누군가에는 지키고 싶은 확고한 신념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는 이루고 싶은 꿈일 수도 있다. 


 어느새 까맣게 어두워진 하늘에는 달이 빛나고 있었다. 교토의 달은 무척 크고 빛이 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슈퍼문 때문에 더 그렇게 보이는 것이었지만, 나는 안다. 슈퍼문이 아니어도, 그날이 아니었어도, 교토의 달은 그랬을 거라는 거. 아주 밝고 환하게 교토를, 그리고 나를 비춰 줄 거라는 것을. 

교토의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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