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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Mar 17. 2018

박아나의 일상뉴스

위아더퓨쳐!

 혼자 있을 때는 잘 몰랐다가 사람들을 만나면 알게 되는 게 있다. 내 나이가 벌써 그렇구나. 한참 나보다 어린 것 같았던 누군가는 마흔이 되고, 누군가의 아이들이 중학교를 간다고 하고, 누군가는 회사에서 부장님이 되어 있다. 친구 눈가에 주름은 만날 때마다 짙어진다. 내 이마의 주름들은 마찬가지겠지. 자꾸만 나오는 뱃살에 불평을 늘어놓지만, 결론은 나이 탓. 이런 건 이제 안 없어진다며, 없으면 또 허전하지 않겠냐고 농담 아닌 농담을 던져본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아이돌들을 지켜보고 얻은 지식을 대방출하고 나니 뿌듯하다. 아직 뒤처지지 않았어... 그리고 헤어질 때 하는 말. 다 필요 없어. 스트레스받지 말고 건강하자. 다른 것보다도 건강이 슬슬 걱정되는 나이, 내 나이가 벌써 그렇게 되었구나. 


 H.O.T의 무한도전 토토가 무대를 보고 울컥하는 이 마음은 무엇일까? 그들의 팬도 아니었는데,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는 나는 뭐지? 그러고 보니 젝스키스가 다시 뭉쳤을 때도 가슴이 뜨끈했었어. 그들의 무대를 다시 봐서 반가운 걸까?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서? 그런 이유들도 있겠지만, ‘난 아직 죽지 않았어. 난 여전히 근사하고 멋져.’라는 걸 그들이 지금의 나이에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큰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나도 그들처럼, 나이는 들었지만, 여전히, 꽤, 괜찮다는 것을 그들이 대신 보여주고 있어서. 그러면서도 그렇게 보이기 위해 애쓰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슬퍼져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니 정말 나이 들어가고 있구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서. We are the future! 그들의 노래처럼 H.O.T도, 나도, 미래를 노래하고 미래를 대표했던 시절이 있었다. 

 

무한도전에서 뭉친 그들! 앞으로는 더 믿을께요, H.O.T!

 아나운서 지망생이었던 시절, 지금만큼 취업이 어렵지는 않겠지만, 그때도 나라의 경제 상황 때문에 취업 시장의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IMF 외환 위기가 왔던 1997년 나는 졸업을 앞둔 4학년이었다. 에이쵸티의 위아더퓨쳐란 노래도 같은 해에 나왔군. 그해 가을부터 방송사 시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내 생애 첫 아나운서 시험이었다. MBC 3차 면접 때, 순서를 기다리며 준비해온 예상 질문지를 보고 웅얼웅얼거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눈길이 느껴졌다. 아나운서 시험 경험이 많아 보이는, 누가 봐도 베테랑의 포스가 느껴지는 지원자였다. “그렇게 준비했어요? 그럼 안돼요, 봐봐요. 나는 예상 질문을 100개 뽑아서 준비했어요. 그거 스무 개 준비한 걸로 하면 안되는데, 어떤 질문이 나올 줄 알고요.” 그녀의 노트를 보니, 정말 꼼꼼히 분야별로 준비한 예상 질문들과 답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종이 한 장 달랑 들고 있는 나랑 너무 비교가 되긴 했다. 준비하려면 정말 제대로 해야 되는구나, 적당히로는 통하지 않겠구나. 그렇게 베테랑 지원자에게 한 수 배우고 나는 그 면접에서 뚝 떨어졌다.  


 진작에 그 한 수를 배웠어야 했나 보다. 졸업을 하고 나는 갈 곳도 없고 할 일도 없었다. 말 그대로 백수가 된 것이다. 그 당시는 ‘취준생’이라는 단어도 없었든지, 아니면 거의 쓰이지 않았던 시절이어서 ‘백수’ 외에는 딱히 적절한 표현이 없었다. 비록 백수였지만, 아나운서만 바라보고 있었던 나는 다른 곳에 지원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런 내 의지와 상관없이 외환 위기의 여파로 방송사들의 공채가 뒤로 밀리거나 취소되는 경우가 계속 발생했다. 나중에는 언론사나 방송사가 아닌데도 시험을 보러 갔던 적도 있다. 시험을 자주 봐야 실력도 는다고. 감 떨어지지 않게 연습 삼아 보자며.  

클론의 '난'에 맞춰 춤추는 더킹배우들. 출처:서울경제

 최근에 ‘더 킹’이라는 영화를 우연히 보다가 신문을 보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세로 쓰기 신문이었다. 어! 언제 적 신문이지? 하고 보니 1997년 신문이다. 세로 쓰기 신문이라니, 아주 옛날이야기를 다룬 영화군.이라고 생각하자마자 아나운서 필기시험 준비한다고 신문 스크랩 한참 하던 시절에 조선일보는 세로 쓰기여서 조선일보를 하기 싫었던 기억이 났다. 아... 그러고 보니 1997년, 아나운서 지망생 시절은 참 옛날 일이었구나. 20년 전이니까... 그때는 신문 참 열심히 봤었는데, 지금은 집에 오는 신문도 없다. 세로 쓰기에서 가로 쓰기로, 그리고 이제는 인터넷으로. 그 변화를 잊을 만큼 그 사이 시간은 흘러버렸고, 지금도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소설 모모에 나오는 것처럼 시간도둑이라도 있는 것일까? 내 시간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어젯밤, 잠들기 직전이었다. 나의 오늘 하루는 어땠는가? 나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제대로 잘 쓰고 있는가? 문득 이런 질문들이 내가 잠드는 것을 막아선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지금까지, 아니 그만두기로 결심하기까지의 시간들, 그리고 그 이전의 시간들은 어떠했는지... 헛투루 보낸 시간들이 많았다. 버려진 시간들이 많았다. 그때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면서 시간만 지나가기를 바랐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별로 없는 것 같았다.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들이 아까웠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내가 원망스러웠다. 그동안 모든 논리를 동원해 난 할 만큼 했다며 나를 지켜왔는데, 그건 그냥 핑계에 불과했다. 

이걸 이루기 위해 전력을 다했던 시절이 있었지. 지금도 할 수 있어!

 1997년으로 돌아가자. 아나운서 지망생 시절로! 백수였지만, 의욕이 넘쳤고, 신문 한 줄도 놓치지 않았고, 세상을 향해 귀를 열어 놓았어. 그때의 나만큼 몸도 젊어지면 좋겠지만, 마음만이라도 젊어지자. 봄이 몰고 온 변화인가? 프리랜서인 나의 마음에도 온기가 돌기 시작한다. 좋은 신호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그러지 않던가? 무엇을 시작하기 딱 좋은 봄이다. 나에겐 아직 미래가 있다! 아임더퓨쳐! 그리고 당신을 위해서도 외쳐본다.  유아더퓨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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