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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Mar 20. 2018

박아나의 일상뉴스

일상의 기록

 여느 날처럼 에세이를 읽고 있었다. 평소 좋아하는 작가이고, 글도 역시 잘 썼다. 마음에 와 닿는 부분도 있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부분들은 아주 작았다. 글을 읽으면서 드는 느낌은... 잔소리 같았다. 어머나! 마음이 꼬였나 봐. 자기계발서도 아닌 글인데, 이래라저래라 강요하는 스타일도 아닌 이 글을 읽고 잔소리처럼 느끼다니... 내가 이상해 진건가? 아니면 찔리는 내용들이 많아서인가?  


 세상에는 많은 글들이 있다. 어떤 글들은 기대 이상으로 나의 마음을 열어주기도 하고, 어떤 글들은 기대한 만큼 채워주지 못한다. 그래도 참 다행인 건 사람들의 취향이 가지각색이어서 여기서 환영받지 못해도 다른 데서는 사랑받을 수 있으니... 이럴 거라 믿고 나도 글을 쓰고 있다. 지금껏 브런치에 딱 열 편의 글을 올렸다. 처음보다는 글을 쓰는 속도가 좀 빨라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글 쓰는 실력이 그만큼 좋아진 건지는 모르겠다. 첫 글을 올릴 때는 이거 올려도 되나 하고 고민의 고민을 거듭했었는데, 지금은 발행 버튼을 과감히 누르는 걸 보니, 그 사이 얼굴이 좀 두꺼워진 것 같다. 그것도 발전이라면 발전이랄까? 


 글을 올리고 나면 다음 글이 고민이 된다. 사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게 무슨 강압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름대로 마음의 목표라는 게 있다 보니 조급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왠지 모를 압박감. 거기다가 다음 글은 어떤 내용을 써야 할지 글감을 찾아내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내가 갖고 있는 게 여기까지인가 싶기도 하고. 여하튼 이 글감을 찾아내기 위해 자꾸만 영감을 찾고 있다. 영감~ 왜 불러? 뒤뜰에 뛰어놀던 병아리 한쌍을 보았소? 아재 개그를 글로 쓰니 이런 느낌이군... 그나저나 이 노래를 알면 진짜... 옛날 사람. 여하튼 영감 아닌 영감을 찾아, 꺼진 불도 다시 보듯이, 봤던 영화도 다시 보고, 배우들 연기에도 좀 더 집중한다.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도 주도적으로 떠드는 역할보다는 잘 들어주려고 애쓰고 있는데, 수다본능을 자제하는 일도 보통 힘든 일은 아니다. 책도 다시 꺼내서 보고, 놓쳤던 책들도 찾아보고... 그러다가 읽기 시작한 에세이를 잔소리로 느끼고 있는 나. 그래도 결국 거기서 그토록 찾던 영감을 찾긴 찾았다. 괜한 반발에서 시작해서 글을 써 내려가고 있으니까 세상에 도움 안 되는 책은 없다. 

최근에 다시 보니 역시 좋다. 미하엘 엔데는 이야기꾼!

 작가들이 영감을 얻기 위해 밤늦게까지 괴로워하다가 그제야 펜을 들거나 그것도 안되면 갑자기 여행을 떠나 여기저기 떠돌아다닐 것 같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작가가 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밤늦게 작업을 시작하기에는 잠을 너무 일찍 자는 데다, 갑작스러운 여행을 떠나기보다는 계획적인 여행을 선호하는 타입이라서 말이다. 그러나 내가 아끼는 동생, 최정화 작가에 따르면, 자신뿐 아니라 많은 작가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딱 시간을 정해놓고 글을 쓴단다. 자신의 책상으로 매일 출근한다는 그녀처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내가 오히려 글 쓰는데 최적화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다행이군. 작가 레이먼드 챈들러도 책상 하나를 정해 거기 앉아 글을 쓰기 시작하면 된다고 했다. 이미 준비는 끝났다. 그렇다면 영감은 책상에서 나오는 것인가? 쥐어짜면 나오는 건가? 아니면 쓰다 보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는 건가? 

글쓰는데도 정답이 어딨어. 이책이 그 잔소리 책은 아닙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말을 잘 하고 싶어서다. 아나운서 생활을 하면서 많은 말을 방송에서 했지만, 내가 주로 한 건 뉴스였고, 교양 프로그램이어서 내 생각을 말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라디오 프로그램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내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언젠가는 좋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나 인연을 맺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글을 써야겠다. 글을 쓰면 쓸수록 생각이 많이 정리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뭘 원하는지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에 대해서도 점점 알게 되니까. 글발이 말발이라고, 내 목소리에 힘을 담아낼 수 있겠지. 

라디오 그만둘 때 고마운 청취자들의 사연. 그리고 게스트였던 정화작가.

 봄이 왔다. 포도나무에 새 순이 돋기 시작하고 블루베리에도 새 잎이 나온다. 겨울 동안 방치해놓은 잡초들과 나뭇가지들을 정리했다. 묵은 생각들이 그것들과 같이 버려졌으면 좋겠다. 이제 새로운 생명들이 뿜어져 나오려면 손길이 많이 필요하다. 물도 주고, 관리도 하고. 지금보다 조금 더 바빠지겠다. 그러고 보니 글 쓰는 일도 마찬가지다. 물도 주고, 거름도 주고, 가지 치기도 하는 것처럼. 쓰고, 고치고, 정리하고. 내 손길이 전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식물에게 물부터 주는 것처럼 글쓰기도 일상이다. 내가 쓰는 글은 일상의 기록일 테고. 그 일상의 기록에 생기가 넘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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