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아나 Mar 28. 2018

박아나의 일상 뉴스

원래 그런 미세 먼지 세상에서 살아가기

  미세먼지로 답답한 하늘을 보니 내 마음도 답답하다. 아니, 내 몸이 답답하다. 지난 주말부터 셀프 감금을 했더니 몸이 근질근질하다. 정말 따뜻한 봄 날씨에 이게 웬일인가? 개나리는 폈고, 조금 있으면 벚꽃도 필텐데... 꽃놀이도 못가는 건 아니겠지? 미세 먼지가 심하니 마음이 우울해져서인지 글도 잘 안 써진다. 언제쯤 좋아지려나 하늘을 쳐다보지만 답이 없다. 이민 가겠다, 공기 상태가 그나마 좋은 강원도로 이사 가겠다고들 주변에서 많이 이야기한다. 물론 그중에 진짜 떠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만은 그만큼 상황이 절박하다는 것이겠지.


 세상이 원래 그래. 미세먼지 낀 날이 많아지는 것도 답답한데, 요즘 내가 종종 듣는 말이다. 혼자서 새로운 일을 하려다 보니 내뜻대로 되는 일이 많지 않다. 예전에 회사 다닐 때는 좀처럼 듣지 못한 말이었는데, '세상이 원래 그래'라는 말, 점점 의식하게 된다. 그렇다. 세상은 원래 그랬다. 기회가 많을 것 같아도 많지 않은 게 세상이고, 경쟁이 심할 것 같은데, 생각보다 더 심한 곳이 세상이다. 동료라는 개념은 비즈니스적 관계에 우선할 수 없고, 믿던 사람도 끝까지 믿지는 말라고 충고하는 게 세상이다. 이용 가치가 있으면 만나지만, 그렇지 않으면 만날 일도 없는 세상, 내가 너무 몰라봤다. 그래서 홀연히 나타나 ‘의리’를 외쳤던 김보성 씨 캐릭터가 한동안 화제가 됐었나! 의리 없는 세상에 의리를 찾는 신선한 사람이라서... 물론 내가 김보성 씨 같은 ‘의리’ 캐릭터는 아니지만, 지켜야 할 의리는 아직 많이 남아있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신선한 캐릭터일 수도... 그렇지만 요즘은 이 ‘세상이 원래 그래 ’라는 말에 가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어쩌면 너무 늦게 끄덕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의리 의리한 김보성 씨, 사진출처: 한국경제

 이 나이에 세상이 원래 그렇다는 말을 동생들로부터 듣는 것도 기분 좋은 일만은 아니지만, 동생들이 겪어왔을 그 세상을 이제야 깨닫다니 참 속 편하게 살아온 것 같다. "나도 알고 있어. 세상이 원래 그런 걸. 다만 조금 늦게 겪어내고 있을 뿐이야, 얘들아."가치관 혼란을 겪고 있는 요즘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 건지, 어떻게 살아야 되는 건지 생각이 많아진다. 글에 집중하면 할수록 생각이 더 많아지는 것 같아 사람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결국 대화는 세상이 원래 그렇다는 걸로 마무리된다. 이런 세상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가 보다. 피할 수 없으면 누구 말처럼 즐겨야 할까? 


 프리랜서로 혼자 활동하면서, 집에서 글을 쓰거나 무언가를 기획하는 시간들이 많아지다 보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는 그 시간들을 자연스럽게 즐길 거라고 생각했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도 아니고, 혼자서 웬만한 건 잘 해내는 사람이니까. 뉴욕 여행도 혼자 잘 다녀왔지 않은가? 그런데 의외로 글을 쓰는 일은 예상치 못한 외로움과 마주하는 일이었다. 글 쓰는 현재의 나는 글 속의 나를 만난다. 글 속의 나는 과거의 나를 과감히 불러내기도 하고, 현재의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나 자신을 진지하게 관찰해볼 일이 별로 없어서였나. 자꾸 나를 생각하지 못한 곳으로 이끄는 글 속의 나. 낯설다. 그리고 이런 낯선 나를 만나는 건 이상하게 외로운 감정을 건든다. 글 많이 쓰면 더 외로워질까 봐 무서워서 대작가는 못될 것 같아... 문득 진짜 사람들이 그립다. 


 글 속의 나는 잠시 내려놓고, 현실의 사람들과 하프 연주회를 보러 갔다. 연주자가 등장하기 전 하프는 홀로 무대 위에 놓여 있었다. 조명을 받고 있는 하프에 새겨진 꽃과 잎들은 더욱 단아하게 빛이 났다. 로코코 양식을 연상시키는 황금 기둥은 님프들이 에워싸고 있는 것 같은 아우라가 느껴졌다. 연주자가 등장하고 공연은 시작되었다. 연주자는 하프를 몸쪽으로 기울여 때로는 가볍게 줄을 어루만지고, 때로는 멀리 떨어진 줄을 재빠른 손길로 튕기며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냈다. 마치 장인이 한 땀 한 땀 화폭에 수를 놓는 모습이 연상된다. 그러나 우아할 것만 같은 하프 연주는 생각보다 우아하지만은 않았다. 양손은 이리저리 정신없이 47개의 줄들을 날아다니느라 쉴 틈이 없었다. 양발은 7개의 페달을 밟아가며 음높이를 조절하느라 가만히 있질 못했다. 게다가 연주자의 몸집보다 훨씬 큰 하프를 완전히 껴앉지도 그렇다고 밀쳐내지도 못한 채 연주하는 모습은 고단해 보이기까지 했다. 마치 세상이라는 버거운 존재를 안은 것처럼 말이다.  

가까이에서 보니 더 아름다운 악기, 하프.

 생각하지 못한 발견이었다. 하프 연주를 보고 현실의 무게를 깨달을 줄이야. 자신의 꿈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하프를 안고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풍부한 소리를 내기 위해 발은 빠르게, 정확한 음들을 만들어 내기 위해 손은 쉴 새 없이, 때로는 하프의 무게에 눌려 아프기도 하지만, 그래야만 좋은 소리가 나오니까 참아내며, 그렇게 말이다. 심지어 하프는 원하는 대로 정확한 음을 내는 게 어려운 악기다. 뛰어난 연주자라도 실수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까다로운 하프 연주처럼 우리 인생도 만만한 게 없다. 내가 생각한 데로, 내가 재단한 데로  굴러가지 않는 게 세상이니까. 그런데 그런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나는 내 하프를 바라만 보고 있었던 건 아닌지. 그러고는  소리가 잘 안 난다고 불평만 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하프의 선율은 내 마음속 동요와 상관없이 아름답게 들려왔다. 그리고 연주자의 표정에는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묻어났다. 그 따뜻한 표정에서 나오는 하프의 선율은 연주자를, 관객들을, 그리고 이 세상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것 같았다. 저런 마음이라면, 저런 태도라면 세상이 원래 그렇다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스르르 열리는 기분이다. 앙코르 곡인 드뷔시의 달빛이 하프의 선율을 타고 내 마음을 어루만진다. 

꽃놀이 가고 싶은 봄날, 미세먼지야 오지 마라. 제발!

 나도 이제는 나의 하프를 연주해야 할 때다. 세상이 원래 그렇다고 세상 탓하기보다는 내가 하는 일을 좀 더 사랑해야겠다. 그것만이 내 마음 같지 않은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유일한 길일 테니까. 글을 쓰고 나니, 마음속 미세 먼지가 걷히는 느낌이다. 실제로도 그런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밤이다.


작가의 이전글 박아나의 일상뉴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